카톨릭 미스테리 ‘콘클라베’…영상미에 반하고 허무한 반전에 헛웃음[리뷰]

동명의 소설 ‘콘클라베’ 원작

랄프 파인즈의 세밀한 감정연기

세속 못지않은 카톨릭 내부 그려내

 

영화 ‘콘클라베’에서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을 연기한 배우 랄프 파인즈. 영화 스틸컷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엄숙한 그레고리안 성가. 오래된 유럽의 광장에서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는 비둘기들. 첨탑에서 울리는 종. 성당 경내와 회랑 사이를 걷는 카톨릭 성직자들의 모습. 잿빛 수녀복과 대비돼 더욱 위압감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진홍색 옷을 입은 추기경들의 모습. 화면비 2.39대 1을 채택해 웅장한 시각적 효과를 더하는 영화 ‘콘클라베’는 역사 덕후, 종교 덕후, 유럽 덕후에게 매력적인 영화다.

내달 5일 개봉하는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의 예기치 못한 죽음 이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의 모임과 선거)가 시작되고, 이때 추기경 토마스 로렌스(랄프 파인즈 분)는 단장으로서 선거를 총괄하게 된다. 당선에 유력했던 후보들이 추문에 줄줄이 휘말리면서 카톨릭의 어두운 면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전혀 의외의 인물이 교황으로 선출되는 이야기다. 랄프 파인즈와 스탠리 투치와 같은 익숙한 배우들은 물론, 신선한 비영어권 배우들의 얼굴도 볼 수 있다.

스탠리 투치가 영화 ‘콘클라베’에서 진보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추기경 알도 벨리니를 연기한다. 영화 스틸컷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 ‘콘클라베’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기본적인 줄거리도 따라간다. 2022년 교황의 갑작스럽게 선종하면서 후임을 뽑기 위해 전 세계에서 118명의 추기경이 바티칸으로 날아온다. 국가·언어·지향에 따라 추기경들은 뿔뿔이 나뉘어 세속 정치 못지않은 계략을 모의하고, 표를 더 모으기 위해 설득에 나선다.

선거에 참여하는 추기경들만 남고 시스티나 성당이 봉쇄되기 직전, 갑작스럽게 빈센트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즈) 추기경이 나타나며 미스터리를 더한다. 그는 선종한 전임 교황이 비밀리에 추기경으로 임명한(in pectore·의중 결정) 이로, 카톨릭의 불모지인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대주교인 것으로 소개된다.

유력 후보인 네 명의 추기경은 그 자체로 가톨릭의 세력 분포를 보여준다. 골수 진보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추기경 알도 벨리니(스탠리 투치), 그 대척점에 서서 사어(死語)인 라틴어를 공용어로 할 것을 주창하는 초보수주의자 이탈리아인 추기경 조프레도 테데스코, 신흥세력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나이지리아인 추기경 조슈아 아데예미, 중도성향의 대중적 인기를 지닌 캐나다인 추기경 조지프 트랑블레(존 리스고) 등 그 누구도 첫 번째 콘클라베에서 과반의 표를 얻지 못한다.

극중 파인즈가 연기하는 로렌스는 벨리니를 지지하는 진보주의자다. 영화는 이 복잡하고 머리 아픈 선거를 총괄하는 로렌스의 고뇌와 스트레스를 중점적으로 비춘다.

시스티나 성당이 봉쇄되기 바로 직전 등장한 묘령의 추기경 빈센트 베니테스. 영화 스틸컷

아이러니하게도 이 네 명의 추기경들은 차례로 치부를 드러내며 존경받는 위치에서 나락으로 떨어진다. 아프리카를 비롯해 신흥 세력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과반수 72표에 가장 근접한 50표를 득표한 아데예미는 30년 전 미성년자인 나이지리아 소녀와의 성추문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한다. 그 소녀를 수녀로 불러들여 아데예미 제거를 계획한 트랑블레는 성직을 매관매직한 사실이 드러난다.

테데스코는 논쟁 중 격분해 종교전쟁을 부르짖으며 무슬림을 ‘짐승’이라고 부른다. 교황이 될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가 만천하에 폭로하며 급격히 지지기반을 잃는다. 벨리니 조차 트랑블레와 연합해 교황과 국무원장을 나눠갖기로 약속을 한 사이였음이 드러난다.

추기경 조지프 트랑블레(존 리스고)와 로렌스가 대립하는 모습. 영화 스틸컷

그렇다면 이 영화의 화자인 로렌스가 결국 교황이 되며 막을 내릴까. 마지막 콘클라베는 아주 빠른 템포로 축약돼 지나가고 결과가 발표된다.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베니테스 추기경이 새 교황 인노켄티우스 14세로 선출된다. 로렌스는 결과에 퍽 만족하는 미소를 보여준다.

그런데 베니테스의 당선은 이 영화의 반전이 아니다. 콘클라베가 종료되고 나서야 로렌스에게 들어온 소식이 진짜 반전이다. 영화 내내 과중한 책임감에 고통받는 연기를 한 파인즈가 황망한 표정으로 얼빠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복싱에서 성별 논란에 휩싸인 알제리 선수 이마네 칼리프를 기억하는가. 신체적 특징이 성염색체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칼리프는 대회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영화 내내 베니테스를 보면서, 어딘가 칼리프와 기시감이 든다면 그것은 아주 ‘근거’가 없지 않은 촉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콘클라베(제8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각본상)/ 감독 에드워드 버거·출연 랄프 파인즈, 스탠리 투치, 존 리스고/ 3월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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