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석화업계 이끌 인재가 없다…서울대 관련 석박사 지원자 3년 반만에 미달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입학 경쟁률 하락
작년 2학기 석박사 통합 과정 경쟁률 0점대
석사 경쟁률도 1점대 초반…수시·정시 경쟁률도 하락
시황 부진 여파로 인기 시들…의대 선호도 쑥
스페셜티 개발 위한 인재 확보 차질 우려


국내 석유화학 공장이 밀집된 여수 산업단지 제공. [여수시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한영대·고은결 기자] 우리나라 인재들이 석유화학 전공을 외면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석유화학 인재 산실이라고 불리는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의 석박사 통합 과정 경쟁률이 3년 반만에 0점대를 기록했다. 중국발 공급과잉 여파로 국내 석유화학 시황이 악화되면서 발생한 결과로 풀이된다.

고급 인재들이 석유화학 산업을 계속 기피하면 한국 석유화학 산업 뿌리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 기업들의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전략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7개 학기 만에 지원자 미달



23일 서울대가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학기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의 석박사 통합 과정 경쟁률은 0.94대 1이다. 모집인원(17명)에 비해 지원자 수(16명)가 적었다. 0점대 경쟁률을 기록한 건 2021년도 1학기 이후 7개 학기 즉 3년 반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같은 기간 석사 과정에서는 모집인원(8명)과 지원자 수(9명)가 비슷했다.

올해 1학기에는 석사 과정 경쟁률 1.44대 1, 석박사 통합 과정 경쟁률 1.21대 1을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최근 석유화학 시황을 고려했을 때 경쟁률은 언제든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서울대 입학을 원하는 수험생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대가 학생부종합전형을 첫 도입했던 2024학년도 신입생 모집 당시 화학생물공학부의 수시 일반전형 경쟁률은 7.1대 1이었지만, 이듬해 6.98대 1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정시 모집 경쟁률은 4.7대 1에서 4.48대 1로 떨어졌다.


석화 산업 위기에 인재들 외면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연구동 전경. [서울대 홈페이지 캡쳐]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뿌리는 1946년에 설립된 서울대 화학공학과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는 90년대 공업화학과 등과 통합하면서 응용화학부로 재탄생했다. 응용화학부는 2005년 현재의 화학생물공학부로 명칭을 변경했다.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는 한국 석유화학 산업을 이끄는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롯데 화학군을 진두지휘했던 이훈기 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가 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2010년대 중후반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을 각각 이끌면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박진수 전 부회장, 허수영 전 부회장은 서울대 화학공학과 70학번 동기이다. 지난해 한화솔루션 큐셀부문 대표이사로 선임된 홍정권 대표도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해 9월말 기준 LG화학, 롯데케미칼에서 서울대 화학공학과 혹은 공업화학과, 응용화학부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임원은 각각 9명, 11명이다.


석유화학계 리더를 배출하는 학부의 입학을 인재들이 기피하는 이유는 시황 부진이라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최근 2년 동안 이어진 중국발 공급과잉 여파로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한때 그룹 대표 캐시카우(수익창출원)였던 LG화학(석유화학 사업 부문 기준),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각각 1360억원, 894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도 영업손실 1213억원에 머물렀다. 시황 부진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려워지자 석유화학 전공에 대한 인재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있다.

이공계 인재들의 의대 선호 현상도 석유화학 전공 기피에 영향을 미쳤다. 윤제용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엔지니어와 의사라는 두 개의 갈림길에서 학생들이 의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화학생물공학부뿐만 아니라 다른 공대들도 학생들의 의대 선호 현상에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페셜티 전략 차질 발생하나


[각 사 제공]


인재들의 석유화학 전공 및 기업 외면 현상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부진한 사업 흐름 속에서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비핵심 자산 매각은 물론 생산라인 가동률 조정 및 성과급 축소, 인력 개편까지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동의 석유화학 사업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글로벌 공급 과잉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10여년 전 입사 당시만 해도 정유사와 더불어 석유화학 기업은 걱정이 없는 탄탄한 회사라 생각했는데, 이젠 월급 몇배 수준의 성과급을 받는 다른 업종 기업의 직원들을 부러워하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석유화학 기업들의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값)는 이달 초 t(톤)당 213달러로 손익분기점(t당 300달러)을 밑돌고 있다. 제품 마진 악화에 기초 석유화학 비중이 큰 사업 구조를 가진 기업들은 당분간 흑자 전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스페셜티 제품 확대 전략을 통해 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다. 중국이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차별화된 제품을 생산해 흑자 달성을 노리는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스페셜티 제품 매출 비중을 2030년 60%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고급 인력들이 석유화학 산업을 외면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의 스페셜티 전략에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관측된다. 스페셜티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연구인력들이 필요한데, 인재들은 반도체를 비롯한 인공지능(AI) 산업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업계 전반이 비상 경영 체제에 준하는 운영에 돌입했고 비용 절감에 힘쓰는 와중에 인력 비용 확대가 쉬운 상황도 아닌 분위기”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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