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신임이사 추천서 엿보인 반도체 위기의식…“경쟁력 있는 기술·제품 확보해야”

사내이사에 CFO 대신 반도체 기술 전문가
국내 반도체 석학도 사외이사 후보에 선임
“기술경쟁력 복원, 시장 리더십 강화” 강조
베테랑 경영인·외국인 사외이사 부재 지적도
TSMC, 이사에 美·英 반도체 CEO들 포진


삼성전자 이사회는 신규 사내이사 후보에 전영현 부회장과 송재혁 사장, 신규 사외이사 후보에 이혁재 서울대 교수를 추천했다. 윗줄 왼쪽부터 삼성전자 한종희 부회장, 전영현 부회장, 노태문 사장, 송재혁 사장(이상 사내이사),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아랫줄 왼쪽부터 이혁재 서울대 교수,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 김준성 싱가포르대국립대 최고투자책임자(CIO), 허은녕 서울대 교수, 조혜경 한성대 교수.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삼성전자가 올해 새롭게 구성하기로 한 이사회를 두고 업계에서는 반도체 사업에 대한 위기의식과 함께 초격차 기술 리더십 회복에 대한 의지가 담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가 오는 3월 20일 정기 주주총회에 상정하기로 한 이사 선임 안건을 보면 이사회 구성원의 무게중심이 기존 ‘금융·재무’에서 ‘반도체·기술’로 옮겨간 것이 눈에 띈다.

먼저 지난해 5월 삼성전자 반도체 수장으로 투입됐던 전영현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부회장)은 10개월 만에 이사회에 공식 합류한다. 전영현 부회장은 DS부문장이자 삼성 반도체의 핵심인 메모리사업부 부장과 삼성전자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까지 겸임 중이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이번 주주총회소집공고에서 전 부회장의 추천 사유에 대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 전문성과 산업에 대한 안목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기술과 제품을 확보할 수 있는 적임자”라며 “다양한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주요 투자자 및 이해관계자의 요청사항을 이해하고 신속히 조율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춰 중요한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 부회장과 함께 반도체 기술 전문가로 꼽히는 송재혁 사장도 새롭게 사내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송 사장은 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반도체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이례적으로 사업부장이 아닌 CTO를 이사진에 포함한 것을 두고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기술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 투입을 통해 이사회의 기술 전문성을 높이고 ‘삼성=기술 회사’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송재혁 삼성전자 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이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5’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이사회는 송 사장의 추천 사유에 대해서는 “과거 VNAND 제품 개발과 사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반도체 기술 전문가로 현재도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신기술 개발을 이끌어가고 있는 바, 신규 사내이사로서 기술기반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최적임자”라며 “기술관련 의사결정이 필요할 경우 반도체 기술과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이사회와 경영진간 접점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었다.

또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 능력과 주변과 원만하게 협업하는 역량을 보유하여 주요 투자자 및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요청사항을 수용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조율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췄다”고 말했다. 이처럼 삼성전자는 이사회 내에서 기술 관련 의사결정이 필요할 경우 송 사장이 이사회와 회사 경영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규 사외이사 후보에서도 반도체 전문가의 등장이 눈에 띈다. 국내 반도체 석학으로 꼽히는 이혁재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기존 사외이사진은 금융·투자·환경·통상·로봇 전문가로만 채워져 반도체 전문가의 부재가 줄곧 지적을 받아왔다.

이 교수는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이자 한국공학한림원 반도체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도 활동하며 침체된 국내 반도체 산업 반등을 위한 발전방안을 꾸준히 제시해왔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시대에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 환경에서 고전하는 상황에서 AI 반도체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 이 교수가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사업에 대한 이사회의 이해도와 전문성을 강화해 과거의 초격차 기술력 및 리더십을 되찾겠다는 방침이다.

이 교수 역시 삼성전자 사외이사로서 밝힌 직무수행계획에서 “기술의 패러다임 변화 속 수많은 반도체 업체들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흥망성쇠를 겪은 사례들을 관찰해왔다”며 “회사가 메모리 및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 업계 최고의 기술경쟁력을 복원하고 시장 리더십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반면, 그동안 이사회에서 줄곧 한 자리를 차지했던 ‘재무통’이 이번 사내이사 후보에서 사라졌다. 2013년부터 이상훈 사장-최윤호 사장-박학규 사장으로 이어지는 경영지원실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꾸준히 사내이사까지 겸임해왔다.

박학규 사장이 작년 11월 정기 인사에서 사업지원TF 담당으로 자리를 옮기고 대신 과거 미래전략실 출신의 박순철 부사장이 CFO에 신규 선임됐다. 박순철 부사장이 새롭게 사내이사에 진입할 것이란 일각의 전망도 있었지만 이번 이사 선임안에서 빠졌다.

사외이사에서도 금융 전문가로 분류되는 김한조 이사회 의장이 오는 3월 임기 만료로 물러난다. 그 빈 자리를 이혁재 교수로 채웠다.

TSMC의 2023년 연간 보고서에 담긴 이사회 구성원들 단체 사진. 영국 출신의 피터 본 필드(앞줄 왼쪽 두 번째) 전 NXP반도체 회장, 미국 출신의 마이클 스플린터(뒷줄 왼쪽 두 번째) 전 인텔 부사장, 모셰 가브리엘로프(뒷줄 왼쪽 세 번째) 전 자일링스 사장, 라파엘 레이프(뒷줄 맨 오른쪽) 전 MIT 총장은 현재도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TSMC 2023 연간 보고서]


이번 신규 이사 추천을 통해 반도체 전문가 강화에 무게를 실었지만 삼성전자 이사회 구성을 두고 경력과 국적의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삼성전자가 절실히 필요한 이사는 기업 경영을 직접 경험한 베테랑”이라며 “전현직 외국인 CEO, 소프트웨어(SW)·AI 전문가, 자본시장·거버넌스 전문가가 삼성전자 이사회에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만 TSMC의 경우 이사회 명단을 보면 반도체 전문가들을 대거 포함하고 있으며 이들의 국적도 다양한다.

현재 TSMC 이사회의 사내이사 3인은 웨이저자 회장을 포함해 모두 대만 국적이다. 나머지 사외이사 7명 중 6명은 외국인이다. 그 중 4명이 반도체 전문가로 분류된다.

피터 본 필드 전 NXP반도체 회장(영국), 마이클 스플린터 전 인텔 부사장(미국), 모셰 가브리엘로프 전 자일링스 사장(미국), 라파엘 레이프 전 MIT 총장(미국) 등이 TSMC 이사회에 합류해 사업 전략 수립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마크 리우 전 TSMC 회장은 이사회 후보를 발표하며 “TSMC 이사회의 전문가들은 세계적 수준의 비즈니스 경험을 가진 대만, 유럽, 미국 시민들”이라며 치켜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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