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은 10년 전 빅딜 끝냈는데…韓은 ‘재탕삼탕’ 대책으로 제자리걸음만 [화석화 기로에 선 석화(中)]

일본式 과잉설비 감축안 주목
석화업계, 산단별 재편 밑그림 제출 예정
상반기 중 정부 후속 대책…맹탕 우려도
일본식 구조조정·원가 절감 지원 등 관심


국내 석유화학공장 전경.[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고은결·한영대 기자]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윤상직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위기에 대해 이같이 평했다. 10여년 전에도 석화업계의 공급 과잉 우려가 제기되자 기업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후 정부 차원에서 석화업계의 재편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책이 몇차례 나왔지만 여전히 산업 위기를 돌파할 묘수는 안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엇비슷한 정책이 잇따른 가운데 판을 뒤집을 ‘빅딜’(통폐합)에 대한 해법이 나올지 주목되는 이유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이르면 이달 말 국내 석유화학 산업단지별로 재편에 대한 밑그림을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2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한 기업과 산단 현장의 의견과 구체적인 지원 요청 방안을 담아 회신하는 차원이다. 이를 위해 단지별로 전문 컨설팅도 진행해온 것으로 전해지며, 정부는 이를 토대로 상반기 중 후속 대책을 발표할 전망이다. 다만 적극적인 설비 조정 방안 등이 담기지 않으면 맹탕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여전하다.

반복된 지원책에도 위기론 ‘도돌이표’


이미 지난 10년간 반복된 지원책들이 대동소이했단 점에서다. 석화산업 소관 부처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중국 내 자급율 증가, 북미 셰일가스 개발 등으로 수출 여건이 나빠지고 있다고 보고 경쟁력 확보 방안을 모색해왔다. 이를 통해 지난 2016년 나온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에는 ▷산업단지 내 업계 간 자발적 재편 추진 ▷경쟁열위 품목에 대한 자발적 설비 감축 유도 ▷핵심기술 확보를 통한 첨단정밀화학산업 육성 ▷기업의 기술개발에 대한 세제·사업화 지원 등 내용이 담겼다. 인위적 통폐합이 아닌, 자활(스스로 사업재편) 기업에 지원하는 게 골자였다.

이를 두고 당시에도 일각에선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중국·일본 등과 달리, 우리 정부는 뒤로 빠져 구체적 대안이나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단 지적이 나왔다. 구체적인 대안은 빠지고, 재탕 육성방안을 내놓는 등 ‘공자님 말씀’이란 비판에 당시 정부는 해외 사례, 전문가 의견, 현장 목소리 등을 취합해 최종 발표한 것이라 반박했다. 또한 공급과잉으로 진단된 분야는 선제적인 사업재편을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6년 9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석유화학 경쟁력 강화방안’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2018년 나온 ‘첨단화학산업 발전전략’도 용두사미로 끝났다. 당시 정부는 범용 석유화학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단 문제인식에 기반, 첨단화학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한단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10조원을 쏟아부어 서산에 첨단 특화단지를 조성하고, 대중소 협력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내놨다. 그러나 특화산단 조성은 일부 민간 업체의 불참 결정 등으로 삐그덕대다가 끝내 무산됐다. 또한 2010년대에는 업황이 회복되며 자연스레 지원에 대한 필요성도 수그러들었다. 결국 지지부진한 재편에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늘어난 배경이다.

근본적 해법 요구↑…“명확 방안 나와야”


이런 가운데 현 상황에선 근본적 해법이 절실하단 목소리가 늘고 있다. 과거 일본과 같은 과감한 정부 주도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숨통이 트일 것이란 견해가 많다. 일본은 지난 2014년 1월 시행된 ‘산업경쟁력강화법’에 따라, 그해 11월 민간컨설팅을 반영한 ‘석유화학산업시장구조분석보고서’를 발표하고 민간의 사업재편을 유도했다.

이와 관련 한국 또한 일본처럼 원유 수입국이므로, 정유사업 부분 통합이 아닌 대대적인 과잉설비 감축을 고려해야 한단 의견이 적잖다. 수요 감소세가 지속적이므로 결국 합병 또는 통합 기업에 생산물량을 몰아야 한단 것이다. 동시에 개별 기업 단에서는 스페셜티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이뤄져야 한단 게 일본식 구조조정 방식을 지향하는 측의 논리다.

다만 정부가 업계의 자율적 재편을 강조한 상황에서, 적시적이고 구체적 지원에 나서는 게 최선이란 분석도 많다. 당장 현장에선 산업전기료 등 원가를 높이는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계의 위기는 중국 대비 원가 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라며 “전기료 감소, 국가 차원의 저렴한 원료 확보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현재의 산업용 전기세 수준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중장기적으론 적극적인 R&D, 세제 혜택 등에 대한 요구가 공통적이다. 성동원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발표된 정책이)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상반기 발표할 정책도 이전과 다르지 않는다면 위기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며 “스페셜티 사업이 힘을 받기 위한 R&D 지원책이 뒤늦게 시행되면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평중 한국화학산업협회 총괄본부장은 “기업 간 결합을 추진하게 되면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 기업이 내야 할 세금 부담도 늘어난다”며 “기업들은 사업 재편 이후 다시 투자에 뛰어들어야 생존하는데, 투자해야 될 자금으로 다 세금으로 지출하면 사업 재편 의미가 없는만큼 금융·세제지원에 대한 명확한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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