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쿠아론, 총괄 프로듀서로 합류
연상호 “판타지 아닌 극사실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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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류준열(왼쪽부터), 신현빈, 연상호 감독, 신민재가 18일 서울 마포구 호텔나루 서울에서 열린 넷플릭스 ‘계시록’ 제작보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 |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인디 애니메이션 만들던 시절부터 제가 가진 색깔을 하나로 모두 응축한 작품이 바로 ‘계시록’입니다. 혹시 제 전작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분이 계신다면 이번 ‘계시록’ 하나만 보셔도 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영화 ‘부산행’,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비롯해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등 개성 강한 작품으로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를 구축한 연상호 감독의 새 영화 ‘계시록’이 오는 2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영화는 범인을 단죄하는 것이 신의 계시라 믿는 목사,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실종 사건 담당 형사 등 각자의 믿음을 쫓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총괄 제작 및 자문을 맡아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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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이 18일 서울 마포구 호텔나루 서울에서 열린 넷플릭스 ‘계시록’ 제작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
18일 서울 마포구 호텔나루서울 엠겔러리에서 열린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 제작발표회에 연상호 감독과 배우 류준열·신현빈·신민재 등이 참석했다.
영화의 제목이 ‘계시록’이 된 이유에 대해 연 감독은 “‘계시’라고 여겨지는 여러 가지 것들이 연속돼서 ‘계시록’으로 지었다”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믿는 인물들이 겪는 파멸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이전 작품들과 달리 판타지 요소를 제외한 지극히 사실적인 심리 스릴러”라고 소개했다.
‘계시록’은 제목만 봐선 오컬트의 느낌이 풍기지만, 사실 이날 참여한 세 명의 배우가 이끌어가는 ‘극사실주의적 이야기’다.
류준열이 연기하는 목사 ‘성민찬’은 개척 사명을 받고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교회를 운영하는데, 아들이 유괴를 당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를 찾아온 전과자 ‘권양래’(신민재 분)가 바로 아들을 유괴한 범인이라고 ‘신의 계시’를 통해 알게 된다. 신현빈이 연기하는 형사 ‘이연희’는 수상한 목사 ‘민찬’과 용의자 ‘양래’의 뒤를 쫓는다. 과거 끔찍한 범죄로 여동생을 잃으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여형사다.
원작 웹툰과는 캐릭터 설정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연 감독은 “원작의 큰 줄거리를 따르지만, 톤에서 차이가 난다”며 “무엇보다 ‘민찬’이 원작에서는 속물적인 성향이 짙은데 영화에서는 좀 더 평범하고 신실한 목사로 만들었다. 이는 류준열 배우의 제안에 따른 것”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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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 스틸컷 |
실제로 류준열은 진짜 목사처럼 보이기 위해 직접 기도문을 만들어 연기했다. 그는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기도 하고, 아는 목사도 여럿 있다”면서 “계시록이 워낙 현실적인 이야기다 보니 진짜 목사가 하는 기도문처럼 만들어 사실적으로 연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현빈이 연기하는 ‘연희’도 원작의 강인하기만 한 성격에서 보다 죄의식에 고통받는 인물로 그려냈다. 연 감독은 “연희가 예민하고 부서질 것 같은 이미지여야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큰 흐름에서 더 극적인 요소가 발생할 것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신민재는 이번 작품이 연상호 감독과 같이한 네 번째 작업이다. 연 감독은 ‘기생수 더 그레이’를 언급하며 “구교환 배우가 연기를 즉흥적으로 하는데 상대역인 신민재가 어떻게 받을까 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너무 잘 받아내길래, ‘힘이 있는 배우구나’ 싶었다”면서 “이번 작품에서는 ‘양래’를 누가 보아도 범죄자처럼 분장시키고, 신민재 배우에게는 범죄자가 전혀 아닌 것처럼 연기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계시록’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어떤 인연으로 쿠아론 감독이 연상호 감독과 ‘계시록’을 함께 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다.
연 감독은 “쿠아론 감독이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때부터 나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봤다고 한다”며 “사실 처음 협업 의사를 타진해 왔을 때 아무래도 ‘부산행’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혹시 ‘부산행’처럼 판타지 요소가 짙은 작품을 같이 하고 싶은 건지 살짝 긴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 감독이 극사실주의적 작품 ‘계시록’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갖는 각자의 믿음과 그에 따른 선택’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비전을 듣고는 누구보다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고 전했다.
“쿠아론 감독은 제가 가진 최초의 비전을 한번 듣고는 편집 단계, 마케팅 단계에 이르러서도 끊임없이 저의 방향성을 지킬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연 감독 역시 쿠아론 감독의 팬이기도 하기에 중요한 장면에서 그의 영향을 받았다.
“원래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이 콘티 단계에서는 여러 장면으로 나눠진 상태였어요. 근데 저는 좀 더 힘이 있게 이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죠. 마침 쿠아론 감독이 워낙 ‘롱테이크’의 대가잖아요. 거기에 영향을 받아 5분 30초짜리 원신 노컷(One scen no cut) 장면으로 변경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각자 이야기를 전개하던 ‘민찬’, ‘연희’, ‘양래’가 한자리에 모여 클라이맥스를 이루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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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세 주역 류준열(왼쪽부터), 신현빈, 신민재. [연합] |
연 감독은 끝으로 이번 작품은 연니버스의 정점임과 동시에 그동안의 작품과 다를 것이라고 밝히며 기대감을 더했다.
“세트보다는 로케이션, 조명 대신 자연광을 찾아다니며 촬영했어요. 공간은 너무 좋은데 해의 방향이 안 좋으면 로케를 계속 다시 구하고 반복하면서 자연스러움을 추구했습니다. 최대한 컴퓨터그래픽을 배제하고 미술팀의 소품을 통해 현장을 만들어갔고요. 동시에 인디 애니메이션 만들던 시절부터 제가 가진 색깔을 하나로 모두 응축한 작품이 바로 ‘계시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