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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년전이다. 로스앤젤레스(LA) 지역 신문과 TV마다 쏟아져 나온 뉴스가 있었다. 이른바 ‘골프 티타임 절도’ ‘시립골프장 티타임 암시장’ ‘티타임 부당거래’ 등으로 매체마다 표현은 달랐지만 주말골퍼라면 금세 알아차릴 얘기였다.
LA시정부에서 관리하고 운영하는 12개 시립골프장의 티타임 예약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인데 그 원인이 한인 브로커들의 농간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립골프장은 물론 퍼블릭코스다. 비싼 연회비를 내지 않고도 누구나 싸고 편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문제는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 사이 피크 타임을 부킹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었다.
LA의 시공원관리국이 관할하는 시립골프코스들의 티타임 예약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이뤄진다. 플레이어스 카드라는 일종의 회원권을 20달러 내고 사면 티타임을 9일전에 예약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카드가 없는 사람보다 이틀 앞서 예약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수년전부터 9일전 새벽 6시에 오픈하는 티타임 예약에 성공했다는 주말골퍼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시립골프코스마다 라운드하는 사람들이 북적 거렸다. 시립골프장 가운데서도 인기 있는 두세곳은 어떻게들 티타임을 잡았는지 하나같이 한인골퍼들로 붐볐다.
1년전 데이브 핑크라는 티칭프로가 시립골프장의 부킹문제를 공론화했다. 그는 팔로워가 20만이 넘는 유튜브 채널과 각종 SNS를 통해 원포인트 골프레슨으로 나름대로 지명도가 있는 인플루언서였다.
해시태그 ‘프리 더 티(#Free The Tee)’를 슬로건 삼아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골프코스의 티타임 부킹시스템을 브로커들이 독차지해 되팔아 돈을 벌고 있다”라며 “그때문에 골프를 즐기지 못하는 시민이 허다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리 더 티의 문제 제기로부터 한달여 동안 시립골프장 티타임 사고팔기는 뜨거운 이슈가 됐다.
LA시 골프장 관리위원회가 대책회의를 열고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가하면 어떤 한인골프모임은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자행된 티타임 거래를 방치했다고 시정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등 벌집을 쑤신 듯했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골프 인구가 늘었던 것도 티타임 잡기가 어려워진 데 한몫했다. 2024년 한해동안 LA시립골프장 12곳의 라운드수는 총 100만회에 달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 비해 28%가 늘어난 것이다.
골프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개별적인 운동인데다 쾌적한 자연환경에서 팬데믹의 스트레스를 풀기에 적합하다고 알려져 LA일대의 퍼블릭 골프장마다 티타임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가 돼버렸다.
하지만 골프인구의 증가 탓이 아니라 브로커의 되팔기 때문에 티타임 잡기가 어려웠다는 게 ‘프리 더 티’의 캠페인을 통해 알려지면서 말 그대로 공분(公憤)이 일어났다.
게다가 브로커와 그들의 주 고객이 한인들로 알려지는 바람에 골프장에서는 다른 인종 골퍼들이 시비를 거는 일도 있었다고 알려진다. 한인 골퍼들이 LA시의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공공의 적이 돼버린 셈이었다.
한인들로서는 오물을 뒤집어쓴 듯한 억울함도 있었지만 워낙 골프를 즐기는 만큼 티타임 부당거래에 주로 개입한 것도 부인하긴 어렵다. 브로커들이 티타임 매매를 할 때 이용한 메시지앱이 한국어로 된 카카오톡이었고 ‘프리 더 티’ 캠페인에서 증거물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LA시 당국은 시립골프장 티타임 부킹 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티타임 예약금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티타임을 잡을 때 1인당 10달러(약 1만4천500원)씩을 예치금으로 내도록 의무화했다. 예치금은 그린피에서 공제하지만 예약하고도 골프장에 나타나지 않는 ‘노쇼’는 물론 예약을 취소할 때도 돌려받지 못했다.
예약금제는 효과를 본 듯하다. 티타임 부당거래가 이슈화된 지 정확히 1년이 된 날인 19일 LA타임즈는 시립골프장 예약금제가 시행된 작년 5월부터 10월까지 처음 6개월동안 예약취소건수가 1만7천739건으로, 2023년 같은 기간의 33만9천732건에 비해 무려 95%나 감소했다고 전했다.
더 돋보이는 건 예약시스템을 통해 티타임을 잡았다가 60회 이상 취소한 사람이 400여명이었지만, 예약금을 의무화한 이후에는 그 숫자가 13명으로 대폭 줄었다는 사실이다. 60회 이상 취소했다는 400여명은 티타임을 되팔지 못한 브로커들이 거의 틀림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예약금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티타임 암시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판단하기엔 이른 듯하다. 원하는 티타임을 예약금까지 웃돈을 주고 사들이는 골퍼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가 주말 골프장에서 심심찮게 들리고 있으니 말이다.
한인동포사회에서는 한국에서 방문한 지인이나 거래처 고객 등에게 골프라운드가 필수 서비스목록의 맨위에 오른다. 부대시설이나 코스 상태는 한국의 회원제 골프클럽에 비할 수 없지만 골프 라운드 자체를 즐기기에는 가성비가 그만이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은 사라지지 않는다.예약금 10달러 정도로 티타임을 포기할 골퍼가 있을까. 브로커는 더욱 더 없지 않겠는가.티타임 예약을 로또추첨 방식으로 바꾸고 예약자와 플레이어가 동일인임을 확인하는 신분증 검사를 하자는 제안이 등장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