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달아요” 한마디 위해 수많은 고민
애순의 모든 시선에 꽃을 심는 남자 연기
“선한 사람 존재한다는 믿음 가지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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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박보검은 젊은 아빠 연기로 그의 진가를 보여줬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콘래드서울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넷플릭스 제공] |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가 있다. 한 회당 적어도 한 번은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제주 섬놈 ‘양관식’은 소위 ‘재벌 3세 남자친구’보다 더 비현실적인, 여자들이 평생 꿈꾸는 그런 남자다. 딸 금명도 끔찍이 사랑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의 0순위는 아내 애순이다.
9살 코흘리개 때부터 시작한 그의 순애보는 중년이 되어서도 애순보다 딱 하루 늦게 떠나겠다고 말할 정도로 평생을 이어간다. 세월에 따라 여러 명의 배우가 관식을 연기했지만, 그중에서도 청년기를 연기한 배우 박보검은 관식의 판타지성을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고조로 올려놓았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서울에서 만난 박보검은 “저는 관식을 판타지적 인물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분명히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인물”이라고 두터운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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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달아요.” 박보검은 ‘관식’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대사는 없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
“작가님들이 인물을 만들 때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삼는 경우도 많잖아요. 저에게 ‘비주얼적이든 연기적이든 듬직한 모습’을 주문하셨어요. 과묵하지만 성실함의 근본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죠. 그래서 그 분위기를 오랜 시간 고민하고, 어떻게 연기할지 많은 생각을 했어요.”
감정을 내지르고, 극단적인 사이코패스 연기를 하면 ‘코리안 조커’라는 별명이 붙으며 열광하는 요즘 분위기 속에서 한정적인 대사와 절제된 표정 연기로 연기력을 인정받는 것이 더욱 희소한 일이 됐다. 그런데 박보검은 그걸 해냈다.
“양배추 달아요.” 어린 관식(이천무 분)에서 박보검으로 변하고 시장 좌판에서 애순(아이유)의 양배추를 대신 팔아주는 장면에서 처음 그의 대사다. 박보검은 “이 대사 한마디 자체가 관식이의 모든 걸 설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대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라면서 “애순을 수호하고 지지하는 관식의 모든 마음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는 말”이라고 뿌듯하게 말했다.
“운동하는 친구이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고, 애순이 기대고 싶은 인물이라고 했어요. 아무래도 평소에 말을 많이 안하면 목소리 톤이 높지 않겠죠. 그리고 아버지(유병훈)는 제주 사람인데 어머니(오민애)는 타지에서 오셨거든요. 그래서 ‘양배추 달아요’ 할 때 제주어의 은율과 어머니 톤의 중간을 맞추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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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직, 우직, 무쇠. ‘관식’을 표현하는 이 말들을 보여주고자 박보검은 근육량만 4~5kg을 증량했다고 한다.[넷플릭스 제공] |
애순은 서울 남자와 결혼해 육지로 가겠다며 관식에게 “섬놈한텐 시집 안 가!”라고 모질게 대한다. 박보검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애순도 사실 평생 좋아한 사람은 관식이 한 사람뿐”이라며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관식과 애순이 살아가는 그 모든 순간이 애틋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실패로 끝난 부산으로의 야반도주 후에 관식과 애순의 애정전선은 주변의 방해로 얼룩진다. 결국 ‘학씨아저씨’ 부상길(최대훈)에게 거의 팔려가다시피 결혼할 뻔 했던 애순. 관식은 체육 유학을 위해 육지로 가는 배에 오른다. 결혼사진용 양장을 피팅하던 애순은 빗속을 뚫고 항구로 뛰쳐간다. 관식은 먼 바다로 이미 떠나온 배를 돌리려다 실패하자 결국 맨몸으로 바다를 건너 애순에게로 돌아온다.
이 명장면으로 많은 사람들이 눈물깨나 흘렸다고 하자, 박보검은 “그때 물속에서 헤엄치고 나와서 기어 올라가 껴안는다. 그리고 서로 아이유랑 상의한 적도 없는데 애순이 ‘옷값 물어내야 해’ 하고 나서 둘이 눈이 마주치고 또 한 번 와락 끌어안는다”며 “연기하면서 대본에 없던 서로의 서사를 만들어나갔던 사례”라고 설명했다.
수영 신에선 대역 한 번 쓰지 않고 박보검이 직접 연기했다.
“원래 물을 좋아하고 어렸을 때 수영을 사랑하는 어린이였어요. 김원석 감독님이 제가 수영하는 걸 보곤 잘한다고 칭찬하시더라고요. 제가 전부 다 소화하고 싶다고 하니까, 그러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드라마 보고 수영인분들이 그렇게 제 수영 실력을 칭찬하셨더라고요.(웃음) 제가 모르는 전문용어까지 쓰면서 디테일하게 제 수영을 분석하세요. 너무 뿌듯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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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검이 수영실력을 이번 ‘폭싹 속았수다’에서 제대로 보여줬다. 다만 ‘수영선수 출신’은 아니라고 정정했다. 그저 물을 좋아하는 어린이였고, 한때 ‘선수반’에서 있었지만 곧 나왔다고 설명했다. |
로미오와 줄리엣, 견우와 직녀 못지않은 18살 청춘남녀의 절절한 사랑을 더는 무서운 관식의 할머니(김용림), 어머니도 막지 못하게 됐다. 관식과 애순은 결혼식을 올리고, 8개월 만에 딸 ‘금명’을 낳았다. 박보검의 진가가 폭발한 것은 젊은 아빠가 되고 난 후다. 순정남 청년에서, 임신한 아내와 아이들을 책임지는 가장이 된 박보검은 ‘등짝’으로도 막중한 책임감을 연기했다.
“듬직한 느낌을 주려고 운동해서 체구를 키웠어요. 근육량만 한 4~5kg 늘렸고, 아빠가 되고는 분장으로 피부를 더 그을렸어요. 바닷가에서 일을 많이 하는 그 느낌을 살리려고 했죠. 외적으로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더 여물어져 가는 게 커서, 행동에 신중함을 더하려고 노력을 많이 기울였어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제가 박보검으로서 팬분들께 받았던 사랑도 기억하려고 했고, 어린 배우들 부모님이 현장에 오셔서 그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참고하기도 했어요.”
박보검은 나중에 딸을 낳게 되면 “관식같은 남자랑 결혼하라”고 말해줄 요량이다. 그는 “애순이가 바라보는 모든 시선에 조용히 꽃을 심고 다니는 남자다. 저도 이런 남자가 되려고 한다”며 “본인 사람도 잘 챙기고, 일도 잘하는데 그걸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미덕, 덕이 있는 사람이 관식”이라고 분석했다.
어느 여름 폭풍우가 치던 날, 막내 ‘동명’을 바다에 잃고 무쇠 같던 관식도 무너져 운다. 죽은 아이를 안고 ‘왜 아무도 구급차를 안 불러줘’라고 얼이 빠져 되뇌는 애순의 30미터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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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치던 날. 애증의 제주 바당에서 만3세 막내아이를 잃고 젊은 아빠는 무너졌다. |
“그날 정말 날씨가 어두웠고 비도 조금씩 흩뿌리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저도 처음 느껴보는, 접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어요. ‘관식이가 애순에게 다가가서 어서 안아주고 아이를 만져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그 회차가 공개되고 나서 많이 받았어요. 근데 그때 관식이는 차마 죽은 애기 얼굴을 못보겠더라고요. 어렵게 느껴졌던 순간이었어요.”
아이를 잃은 관식과 애순은 사흘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두문불출한다. 남은 두 아이가 부모의 눈치를 보며 속을 끓이고 있음을 알아챈 후에야 부엌에 쌓여있는, 도동리 이웃들이 십시일반한 음식들이 눈에 들어온다.
박보검은 “이 작품 메시지 중 하나가, 애순과 관식, 그 가족들, 도동리 사람들처럼 이렇게 따뜻하고 선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라며 “이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이, ‘나도 따뜻한 사람이 되어줘야지’ 이렇게 생각을 해보실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말했다.
“요즘은 워낙 개개인이 각자 살아가는 시대잖아요. 애순과 관식의 삶이 힘겨워 보여도 살펴보면 항상 주변 사람들이 챙겨주고 있어요. 선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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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로 꽃을 틔우며 봄의 절정을 마주한 박보검. |
애순과 관식의 삶은 유채꽃 흐드러진 봄부터, 아이들로 복짝이는 ‘여름’을 지나 ‘가을’과 ‘겨울’로 순서대로 향한다.배우 박보검에게 ‘폭싹’을 만들고 내놓은 지금 현재는 ‘봄’이다.
“싹이 터서 꽃이 핀 것 같아요. 아마 이제 곧 ‘여름’을 마주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