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땅 밟은 이택균 책가도 국내 첫 공개

이택균, 책가도 10폭, 조선 19세기, 비단에 채색.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민화전’ 전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짙푸른 배경을 두르고 단정히 놓인 서책, 정갈한 붓과 벼루, 섬세한 문양이 새겨진 화병까지. 폭마다 3단으로 된 차분한 서가에서 묘한 생동감이 흐른다. 이는 조선 왕실 화원이었던 이택균(李宅均·1808~1883 이후)이 그린 ‘책가도 10폭’이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 ‘조선민화전’의 도입부를 장식한 이 작품은 최근까지 한 저명한 미술품 수집가의 뉴욕 타운하우스에 걸려 있었다. 그 주인은 다름 아닌 세계적인 디자이너였던 미카 에르테군(1924~2023). 조선의 책가도가 서구 명망가의 집 한 켠을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이택균의 책가도는 에르테군이 소장한 유일한 한국 고미술품이었다.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의 고미술품점에서 구매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작품은 지난해 12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등장했고,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치열한 경쟁 끝에 64만2600달러(약 9억4500만원·수수료 포함)에 낙찰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땅에서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 후기 책가도는 단순한 정물화가 아니었다. 왕실과 양반가에서는 학문과 교양을 상징하는 서책과 문방구, 골동품을 그린 이 그림을 통해 지식과 권위를 드러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이택균의 책가도는 기존의 병풍 형식과 달리, 10개의 패널로 나뉘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이 독특한 형태는 조선의 미술품이 서구에서 어떻게 감상되고 활용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미술관 측은 “책가도 상단에 새겨진 ‘이택균인(李宅均印)’ 도장을 통해 1871년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는 책가도 외에도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민화 명작들이 공개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소장한 ‘금강산도 8폭 병풍’을 비롯해 서울대학교 박물관,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호림박물관 등 20개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작품 1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6월 29일까지. 성인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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