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전 넘어 두그룹 자존심 문제
세계시장 감안 ‘원팀’ 필요성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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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이 또다시 지연되며,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오랜 경쟁 구도가 조명받고 있다.
양사는 20여년간 잠수함과 수상함 분야에서 국내외 사업을 두고 맞붙어왔다. 이번 KDDX 사업의 경우 여론전과 고소·고발전이 이어지며 어느때보다 신경전이 치열한데, 그만큼 이번 입찰이 양사 함정 레이스의 최대 승부처라는 평가가 많다.
▶2000년대 손원일급 잠수함서 본격대결 시작=양사는 수십년간 해군 주력함정을 두고 경쟁을 이어왔다.
본격적인 대결 구도는 2000년대 들어 해군의 차세대 전력 확보를 위한 KSS-II(손원일급 잠수함)와 울산급 FFX(호위함) 사업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의 KSS-I 사업엔 HD현대중공업이 참여하지 않았다. KSS-II는 양사가 모두 참여했다. HD현대중공업이 주계약자로 선도함 설계부터 6척을 건조했고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3척을 건조했다. 당시 사업 배분을 놓고 일부 수주 경쟁 분위기도 있었지만, 정부의 조정에 따라 분담을 했다.
2010년대 들어 KSS-III(도산안창호급) 사업에선 경쟁 구도가 더 명확해졌다. 이 사업은 총 3단계(배치(Batch)-I~III)로 나뉘는데 각 단계에서 수주 경쟁이 이어졌다. 2010년대 초반 착수한 초도 개발형 배치-I(1~3번함) 단계에선 당시 대우조선해양이 1번함과 2번함을, 현대중공업이 3번함을 건조했다.
중형 수상함 전력 현대화가 핵심인 FFX 사업의 경우, 2010년대 초반 배치-I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선도함을 설계·건조해 주도권을 잡았다. 이후 배치-II에선 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각각 4척씩 수주했다. 그러나 배치-III에선 판세가 달라졌다. 1번함은 현대중공업이 설계와 건조권을 확보했지만 2023년 하반기 한화오션이 5번함과 6번함 수주에 성공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놓고서도 힘겨루기=양사의 격돌은 방산 수주를 넘어, 조선업계 구조조정 국면에서도 이어졌다. 2008년 당시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을 추진하며 한화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유력 인수 후보로 떠올랐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계 3위, 현대중공업은 1위로, 두 회사가 결합할 경우 국내외 조선산업에 ‘메가 플레이어’가 탄생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독점 우려와 산업 생태계 붕괴 가능성이 제기되며, 정부와 채권단은 경쟁 체제 유지를 위해 한화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런 선택은 시장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업계에서는 한화가 인수에 성공하면 현대중공업에 맞설 유일한 대항마가 등장할 것으로 봤다.
다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한화의 인수는 무산됐고,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 산하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불안정한 입지를 이어갔다.
2020년대에 접어들며 상황은 다시 변화했다. 한화는 방산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재도전했고, 결국 2023년 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한화오션’으로 새 출범했다.
두 회사는 다시 동일 선상에서 글로벌 방산 시장을 향한 출발선에 서게 됐다. 한화오션은 기술 개발·사업 운영 등에서 보다 과감한 전략을 펼칠 수 있게 됐고, HD현대 역시 기존의 수상함 경쟁력을 더욱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
▶뜨겁게 싸웠지만…이젠 ‘원팀’ 필요=최근 몇 년간 양사는 잠수함과 수상함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어느 정도 영역을 나눈 듯 보였다. 그러나 대형 국책 방산 프로젝트가 나올 때마다 두 회사는 격돌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KDDX 사업의 경우 기술력, 생산능력, 통합 전투체계 역량 등 다면적인 경쟁 요소가 있다. 또 설계 권한과 보안 문제 등 쟁점을 놓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사업 지연과 혼선 우려도 늘고 있다.
특히 이번 사업은 단순한 수주전을 넘어, HD현대그룹과 한화그룹이라는 두 대기업 간의 자존심 대결로도 비쳐진다. 방산 수출이 급증하며 업계가 호황을 맞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양사 모두에게 기술력·브랜드·시장 신뢰도를 걸고 치르는 전략적 승부처가 된 셈이다.
다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원팀 코리아’ 가능성을 다시 점검해볼 시점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독일, 일본 등은 정부-기업-군의 연합 전선을 구성해 호주 등 대형 수주에 성공한 것과 달리, 한국은 기업 간 이견으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이외에 방산물자 수출 승인 절차의 ‘패키지화’가 필요하단 견해도 나온다. 현재는 함정 수출 시, 탑재 장비·무기·기술 자료의 수출 승인이 개별 건마다 필요해 행정 지연, 정보 누락, 승인 거부 등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복합무기체계인 함정 특성상, 정보 요구량이 방대하고 보안 기준이 높아, 실시간 대응에 한계가 있다. 업계에선 수출 가능 범위·정보 수준을 사전에 묶어서 ‘패키지’로 승인받는 방식이 제안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구매국과의 협상에서도 일관성과 신뢰도 확보, 행정 부담 최소화의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고은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