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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전 ‘아득한 오늘’ 전시 전경. [국제갤러리]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오늘날 전통은 어디에 깃들어 있는가. 사라진 과거의 그림자인가, 저 너머에서 숨을 고르며 때를 기다리는가, 아니면 모습을 바꿔 어느새 우리 곁을 스치고 있는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 한옥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아득한 오늘’은 이 질문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1930년대 지어진 한옥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삼았다는 점으로도 전시 기획은 문턱을 넘어섰다. 한옥은 그저 장소가 아니라 오늘을 비추는 불완전한 거울이라서다.
현대미술가이자 영화감독, 평론가인 박찬경이 기획한 이 전시는 ‘아득하다’는 형용사가 가진 멀고 낯선 감정을 팽팽하게 당긴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오늘의 감각, 멀면서도 가까운 시간의 간극, 바로 그 틈에서 다섯 명의 작가가 희미해져가는 감정과 기억의 조각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불러낸다. 그래서 이 전시가 주목하는 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소환하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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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전 ‘아득한 오늘’ 전시 전경. [국제갤러리] |
김범(62)은 틀에 박힌 고정된 이미지를 뒤집는다. 그는 언어와 사물 안에 숨겨진 익숙한 시선을 묘하게 비틀어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낸다. ‘괴석도’가 대표적이다.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추상화는 괴석도라는 형식미를 빌렸으나, 그에 담기는 전통적 상징인 ‘군자의 마음’에서는 비켜난다. 전통을 단일하고 고결한 정신의 계보로 보지 않고 오히려 시대와 해석에 따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전이되는 살아 있는 감정으로 바라본다.
조현택(43)은 사진을 통해 전통이 박물관에 고이 보관된 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뒷골목 어딘가에서 간신히 버티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면에는 도심 변두리에서 작가가 실제로 마주한 조각난 불상이 담겼는데, 그 자체로 기묘하다. 그렇게 작가는 ‘낯섦’을 의도적으로 방치하면서 일상 속 낡고 부서진 기억도 전통이 될 수 있는지 묻는다.
최수련(39)은 동아시아를 떠돌고 있는 귀신 설화에 착안해 그 안에 내재된 부조리를 탐색한다. 그의 그림 속 글귀들은 동서양의 미술 표현 방식을 넘나들며, 이름조차 남지 않은 존재들의 억눌린 목소리를 담아낸다. 그 목소리들은 생과 사를 잇는 실타래처럼 화면 위를 유유히 흐를 뿐이다.
최윤(36)은 텔레비전(TV)를 오늘날 가장 우주적인 사물 중 하나로 본다. 그는 삼성전자의 40인치대 TV를 본떠 만든 작품 ‘도자 삼성TV갤럭시46’로 디스플레이가 단순한 가전기기를 넘어 어떻게 거시적 시공간을 투사하는 창이 되었는지 묻는다.
임영주(43)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라는 감정을 포착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43분 분량의 영상에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전설 속 인물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담겼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장면을 따라 전개되는 서사는 비합리적 믿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넌지시 보여준다. 다만 작품은 작가의 단순한 비판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자신 역시 그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드러내며 관객에게도 스스로를 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전시는 7월 20일까지. 무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