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 다해 홀가분하다” 43년 은행경력 은퇴 민 김 오픈뱅크 행장

축소-6
26일 주주총회를 통해 은퇴하는 오픈뱅크 민 김 행장이 43년 은행경력을 마무리짓는 회견을 하며 미소짓고 있다.<최한승 기자>

“매 순간 최선을 다했으니 정말 홀 가분 하네요”

최초의 한인 여성은행장으로, 한인 은행의 최고경영인(CEO)으로서 최장수 재임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오픈뱅크 민 김 행장이 43년간의 금융경력을 매듭짓고 공식 은퇴했다.

민 김 행장의 경력은 입지전적인 성공 스토리로 채워진다.

지난 1982년 구 윌셔스테이트 뱅크의 텔러로 입행, 불과 13년만인 1995년 구 나라은행의 최고운영책 임자(COO)에 올랐고 2006년 나라은행 행장 자리에 오르면서 미주 한인 은행 사상 최초의 여성 행장의 탄생이라는 기념비를 세웠다.

위기도, 위험도 있었다. 2010년 당시 나라은행과 중앙은행의 합병 움직임 속에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승승장구하던 경력에 첫 뒷걸음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3개월 여의 공백기 후 금융감독국의 제재로 존폐 위기에 몰렸던 FS제일은행장으로 부임,현역에 복귀했다.

당시에는 위험한 선택으로 보였다.복귀조건으로 ‘은행 세전수익 10% 사회환원’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적자에 허덕이며 폐업 위기까지 몰린 은행 실정에 맞지 않는 조건이었다.하지만 이사회는 김 행장의 조건을 받아들여 화제가 됐다.

그에 대한 반발도 당연히 뒤따랐다. 일부 주주들은 당시 ‘적자로 문 닫을 지도 모르는 은행에서 수익 방안 보다 사회환원을 앞세우는 게 말이 되는가’, ‘기독교 신자인 민 김 행장이 십일조 발상으로 10% 환원을 얘기하는 데 개인의 신앙심을 은행수익과 연결할 게 아니라 개인 돈으로 해야한다’는 등의 비난이었다.

하지만 김 행장의 세전수익 10% 환원 정책은 2011년 오픈 청지기 재단 출범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15년여 동안 수백만달러를 커뮤니티의 각종 단체에 기부, 한인기업의 대표적인 사회환원 모델케이스로 자리잡았다.

김 행장은 취임하자마자 은행이름을 오픈뱅크로 바꾸며 이미지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부실대출을 과감히 정리하며 은행에 숨결을 불어넣은 뒤 나스닥 상장까지 성사시키는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취임 2년째인 2012년 오픈뱅크는 창립 후 처음 흑자를 기록했다. 1100만 달러 증자에도 성공,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2012년 2억 달러였던 자산은 2013년 3억 달러, 2014년 5억 달러, 2016년 7억 달러로 뛰어올라 2018년에는 뱅크오브 호프, 한미은행, PCB뱅크에 이어 나스닥시장에 입성하는 네번째 한인은행이 됐다. 김행장의 임기 초반 7년 동안 오픈뱅크의 자산규모는 800%나 증가했다.

김 행장은 첫번째 임기만료(2015년 3월)를 1년여 앞둔 2014년 5월 2022년 7월까지 초유의 7년 연장계약을 이루더니 2020년 10월에는 이 계약을 2024년 12월 31일까지 4년 더 늘려 14년 임기라는 장수 은행장 시대의 문을 열었다. 문 닫을 뻔했던 은행을 상장하고 커뮤니티 환원 모델까지 정립했던 만큼 14년 세월은 ‘대체불가 CEO’였음을 증거한 셈이다.

크레딧책임자였던 오상교 전무를 후임으로 지명하고 26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지주사인 뱅콥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김 행장과 퇴임 소감을 나눴다.

오픈뱅크 본사에서 포즈를 취한 민 김 행장

오픈뱅크 본사에서 포즈를 취한 민 김 행장<헤럴드경제 자료>

-긴 세월의 금융계 경력을 마무리하는 소감은 어떤지.

▲은행원 생활을 큰 탈 없이 명예롭게 마칠 수 있게 됐다.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행장 취임시 목표했던 것 이상을 모두 이뤄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물을 봤으니 정말 홀가분하다.

-은퇴를 결심한 계기는

▲당초 62세에 은퇴하려 했지만 두차례 연임으로 시기를 넘기게 됐다. 은퇴를 결심한 그 순간부터 3년여간 은행 시스템 정착과 향후 경영 방침 등에 대해 깊게 고민했고. 미래를 대비한 인사(차기 행장 등)의 작업도 마쳤다. 마침 최화섭 전 이사장께서 은퇴하는 시점이라 모든 것이 부드럽게 진행됐다..

-이사장 직에서 물러나 다시 행장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그럴 가능성은 없다. 이제 내 자리는 행장이 아닌 이사장이다. 최화섭 이사장의 은퇴로 생긴 공석을 채움과 동시에 신임 오상교 행장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뒤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행장의 목표 실현을 위해 지원하는 것, 그리고 오픈뱅크에서 다진 기업문화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역할이 될 것이다.

-복귀 당시 은행이 위기였는데 자신이 있었나. 어려운 상황에서 수익환원을 복귀 조건으로 내건 까닭은 무엇이었던가.

▲깊게 고심했고 정말 열심히 기도한 결과 자신이 생겼다. 특히 위기에 빠진 은행을 정상궤도에 끌어올리는 일은 큰 도전이었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임기 중 증자성공, 자산 급성장, 나스닥 상장 등 좋은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후회하는 일은 없는가

▲없다고 하고 싶지만 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너무 일과 교회(믿음)를 우선시하다 가족, 특히 아이들에게 소홀했다.주변의 많은 도움 속에서 아이들이 별탈 없이 잘 성장했고 이제는 가정까지 꾸려 살고 있지만 정말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했던 매 순간 엄마로서 그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만약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행장을 하지 못해도 좋으니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는 선택을 할 것이다.

-후배 행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생각은 많지만 정작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세대 차이에 따른 관념, 정서적 차이 그리고 각자의 성향을 무시하고 전하는 충고는 좋게 전달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아주 조심스럽다. 긍정적 마인드로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면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는 말로 대신하겠다.

-한인 커뮤니티에 전하고 싶은 말은

▲오픈뱅크를 비롯한 모든 한인 은행은 물론 한인 기업들에게도 커뮤니티 봉사와 환원 정신이 이어져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사회를 이루기를 희망한다. 최한승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