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는 피아노’의 주인공 예핌 브론프만 “음악이 나를 일으켰다”

오는 21일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
2001년 이후 24년 만의 韓 독주회
데뷔 50주년 맞은 거장의 음악여행


2015년 10월 오스트리아 빈 콘체르트하우스에서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마친 뒤 찍은 피아노엔 피 얼룩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slippedisc 캡처]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하얀 건반 위로 얼룩얼룩한 핏자국이 묻어났다. 연주 내내 손가락에서 피가 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바르톡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주한 그는 러시아의 피아노 거장 예핌 브론프만. 2015년 10월 13일 오스트리아 빈 콘체르토하우스에서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SO)와의 협연 무대였다. 이 사진의 제목은 ‘피 묻은 피아노’.

“그 순간에는 멈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음악이 저를 이끌었고, 관객과 오케스트라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 연결을 결코 놓칠 수 없었습니다.”

예핌 브론프만(67)은 10년 전의 일화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일진이 사나웠다. 콘서트 당일 아침 날카로운 물체에 손가락이 베이는 사고가 있었다. 상처는 봉합했지만, 연주를 할 수는 없다고 의사가 말했다. 브론프만은 그럼에도 피아노 앞에 앉았다. ‘관객을 실망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음악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는 클래식 음악계의 전설이 됐다.

그가 한국을 찾는다. 국제 무대 데뷔 50주년을 기념한 내한 리사이틀(9월 21일, 롯데콘서트홀). 한국을 찾는 것은 2023년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와의 협연 이후 2년 만이나, 독주회는 2001년 이후 무려 24년 만이다.

브롬프만은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것은 멋지고 다층적인 대화이지만, 독주 리사이틀은 훨씬 더 개인적인 대화”라며 “섬세한 뉘앙스를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 [롯데콘서트홀 제공]


몇 차례 내한 공연을 가진 만큼 그는 한국 관객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브롬프만은 “지금도 마지막 리사이틀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한국에서의 공연은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지만, 만나자마자 바로 이어지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오래전부터 한국의 클래식 음악가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서 연주할 때마다 전문가이든 학생이든 한국 음악가들이 지닌 탁월한 기교와 음악적 감수성의 조합에 감탄한다”며 “예술에 대한 진지한 태도, 깊은 존중, 그리고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 감정에 대한 열린 태도를 보며 한국인들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한국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더 깊어졌다고 느낀다. 한국처럼 집중력 있고 열정적인 청중과 직접적인 감정적 연결을 나누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선 브론프만이 걸어온 피아노의 길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1부에선 낭만주의의 정수를 담아낸 슈만의 ‘아라베스크 C장조’와 브람스의 ‘3번 소나타’를, 2부에선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 러시아 피아니즘을 새긴 프로코피예프 작품들을 들려준다.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 [롯데콘서트홀 제공]


드뷔시와 프로코피예프를 나란히 배치한 것은 극적인 대비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는 “드뷔시의 음악은 섬세하게 변화하는 빛의 세계와 같고, 프로코피예프의 7번 소나타는 전쟁 시기의 폭발적인 강렬함을 지니고 있다”며 “드뷔시에 이어 프로코피예프가 연주될 때는 마치 음향적 충격파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리듬, 구조, 색채에 있어 저마다의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는 두 곡이 만들어내는 대비가 아이러니하게도 프로그램을 통합하는 요소가 되리라고 브롬프만은 귀띔한다.

일곱 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가 피아니스트로 50년간 지켜온 그의 음악적 철학은 “악보에 대한 정직함, 작곡가에 대한 존중, 음악 속 더 깊은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이다.

브롬프만의 음악 여정에도 무수히 많은 고비와 난관이 있었다. 그는 “부상, 어려운 레퍼토리, 자기 의심의 순간 등 많은 도전이 있었다”며 “그때마다 음악 그 자체가 언제나 저를 일으켜 세웠다”고 말한다. 그에게 음악과 피아노는 삶의 모든 것이다.

“피아노와 내가 사랑하는 작품들로 돌아올 때마다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제 삶에서 피아노 없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어요.”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