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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의 선거 포스터와 ‘국민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바로 세운다’ 문구 [고이즈미 신지로 홈페이지 캡처] |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오는 4일 새롭게 일본 자민당을 이끌 총재로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차남이자, 2019년 9월 “기후변화는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며 ‘펀쿨섹좌’라는 밈으로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탄 그 인물이다. 최근에는 ‘댓글 공작’ 논란을 일으키며 총재 자격에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초 일본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유력한 차기 총재로 꼽혔다. 30여년간 일본 우익과 함께 한 정치 활동을 바탕으로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갑자기 판도가 바뀌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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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총재 선거는 지난달 7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리직 사임을 공식 표명하면서 열리게 됐다. 지난달 중순 고이즈미 농림수산상 뿐 아니라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전보장상,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이 후보로 공식 출마했다.
1차 투표는 국회의원 295표와 당원(당비 납부 일본 국적자)·당우(자민당 후원 정치단체 회원)표를 각각 50%씩 반영한다. 당원 표는 의원 표수와 같은 295표로 환산된다. 만일 1차 투표에서 과반이 나오지 않으면 상위 2명이 결선 투표를 치른다. 결선은 의원 295표와 전국 지부 47표가 합산돼 의원 표심이 최대 변수가 된다.
그런데 최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승기를 잡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차에서는 50%, 2차에서는 약 86%의 영향을 끼치는 ‘의원 지지’ 측면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는 분석이다.
선거 초반만 해도 일본 국민 여론상으로는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우세했다. 요미우리신문이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자민당 총재에 적합한 정치인’ 1위는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24%), 2위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21%)이었다. 지난달 13~14일 요미우리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재로 가장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29%의 지지를 얻으며, 고이즈미 농림수산상(25%)을 앞섰다.
이같은 여론에 힘입어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에 대한 의원과 당원·당우 지지세가 확장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최근 자민당 당원·당우 확장세나 의원들의 여론 인식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가다. 자민당 내부의 고령 당원이 많다는 점도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에 불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하야시 관방장관의 ‘맹추격’이 갑자기 부각되며 판세가 뒤집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야시 관방장관이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을 표로 앞서기는 쉽지 않지만, 사실상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연대하게 될 지지세력이란 분석이 나오면서다.
이로 인해 초기의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과 고이즈미 농림수산상 양강구도가 사실상 깨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아사히신문이 1일 보도한 정세조사에 따르면 고이즈미 농림수산상 지지 의원은 7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하야시 관방장관 57명,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담당상 37명,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31명,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29명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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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왼쪽)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연합] |
이번 총재 선거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긴 어려울 전망이다. 판세를 종합하면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의원·당원 표를 두루 확보해 결선 진출이 확정적이다.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후보자 5명 가운데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이어 나머지 한자리를 두고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담당상과 하야시 관방장관이 경쟁하는 구도다. 현재 당원 지지에서는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담당상이 앞서지만, 최근 하야시 관방장관이 의원 지지를 넓히며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이에 따라 2차 결선투표가 불가피하고, 이 경우 고이즈미 대 다카이치 구도의 투표가 진행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하야시 관방장관의 지지표 상당수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 쪽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고이즈미 진영 내에서는 “하야시가 표를 끌고 올수록 결선에서 유리하다”는 기대감도 있다고 전해진다.
닛케이는 자체 분석을 통해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이 약 170표,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약 130표, 하야시 장관은 약 110표를 확보한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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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AP] |
이 신문은 “결선 투표는 의원 표가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며 “현재 열세인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과 모테기 도시미쓰 전 자민당 간사장을 지지하는 표의 향방도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고 짚었다.
산케이신문은 당내 유일한 파벌인 아소파를 이끄는 아소 다로 전 총리의 의중도 중요한 변수라고 해설했다. 아소파 소속 의원은 43명이다.
아소 전 총리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 중 누구를 지지하는지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하야시 장관이 결선에서 대결할 경우 지역구 사정과 그간 관계를 고려했을 때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산케이가 전망했다.
지난달 25일께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의 유력 후보인 고이즈미 농림수산상 캠프가,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에 고이즈미 후보를 칭찬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작성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 및 교도통신 보도에 따르면 고이즈미 후보 캠프의 홍보 총괄을 맡은 마키시마 카렌 전 디지털상의 사무소는 총재 선거가 시작한 직후인 이달 중순께 캠프 관계자들에게 ‘니코니코 동화’측에 긍정적인 댓글을 작성해달라는 이메일을 발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니코니코 동화’는 일본에서 10~30대 젊은 층과 서브컬처 팬들이 많이 이용하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다. 슈칸분슌은 고이즈미 후보 캠프 진영이 니코니코 동화 측에 ‘스텔스 댓글’을 달도록 지시한 이메일을 입수했다며, 해당 이메일에 포함된 댓글 예시도 함께 보도했다.
스텔스 댓글은 특정 인물이나 제품, 서비스에 대해 조직적으로 긍정적인 내용을 인터넷 게시판이나 동영상 댓글 등에 몰래 작성하는 행위를 말한다.
슈칸분슌이 입수한 이메일에는 “이시바 총리를 설득할 수 있었다니 대단하다” “거친 일도 척척 해내며 한층 성장했다”는 등 고이즈미 후보를 칭찬하는 내용의 댓글 예시 24개가 포함돼 있었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에 대한 칭찬 뿐만이 아니라, 다른 후보를 겨냥한 듯한 댓글 예시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댓글로 “비즈니스 에세 보수에 지지 마라”는 표현이다.
‘비즈니스 에세 보수’는 정치권 내에서 보수인 척하며 실상은 이익만 추구하는 위선적 정치인, 즉 ‘가짜 보수’를 비꼬는 말로, 또 다른 유력 후보인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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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출정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
이에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선거캠프가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칭찬 댓글을 써 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26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나 자신은 몰랐던 일이지만 총재 선거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다른 후보들에 대해 “비난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해당 메일은 마키시마 의원 사무소의 독자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고이즈미 농림상은 “최종적으로 일어난 일의 책임은 나에게 있기 때문에 비판은 제대로 내가 받겠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으며 철저한 재발 방지로 계속 긴장감을 갖고 총재 선거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일본은 의석수가 많은 여당 대표가 총리를 맡기 때문에, 후임 자민당 총재 선출 뒤 국회에서 차기 총리를 지명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시게루 일본 총리의 뒤를 이을 새 총리가 오는 15일 국회에서 선출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요미우리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이 최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은 이달 15일 임시국회를 소집해 같은 날 총리 지명선거를 치르는 방향으로 조율에 들어갔다.
정부는 이르면 8일 여당과 야당에 임시국회 일정을 전달할 방침이다. 신임 총리가 정해지면 곧바로 새 내각이 출범한다. 총리는 차관인 부대신과 차관급인 정무관 인사까지 마친 뒤 이르면 20일께 국회에서 첫 소신 표명 연설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마이니치가 전했다.
이번 총리 지명선거는 오는 4일 치러지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를 계기로 실시된다. 내각제인 일본에서는 보통 집권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다.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모두 야권이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지만, 야당들이 총리 지명선거에서 단일화에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커 제1당인 자민당 새 총재가 무난히 총리에 취임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와 이시바 총리가 취임할 당시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 며칠 뒤에 총리 지명선거를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두 선거 사이에 약 열흘 간격을 두게 됐다. 신임 자민당 총재는 총리 지명선거 전에 연립 정권 확대를 염두에 두고 야당과 협의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연정 확대 대상으로는 주로 제2야당 일본유신회와 제3야당 국민민주당이 거론된다. 그중 유신회가 연정 참여에 더 적극적인 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