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인 만큼 회수하려면 IP 사업은 숙명
상업성, 이미지 훼손하면 망하는 지름길
궁극적 지향점은 팬덤 넘어 대중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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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타이틀곡 ‘스파게티’로 컴백한 르세라핌은 음악의 콘셉트와 굿즈를 연계, 파스타 면발을 재현한 이어폰, 스파게티 박스 형태의 앨범 패키지 등 콘셉트형 MD를 선보였다. [쏘스뮤직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어떤 아티스트의 경우 많게는 전체 매출의 80%가 MD(기획 상품)에서 나와요.”
스타이건 캐릭터건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팬이었다면 안다. ‘내 스타’가 먹고 마시고 입고 즐기는 모든 것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말이다. 그것을 꿰뚫은 것이 바로 IP(지식재산권)비즈니스다.
3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4대 엔터테인먼트(하이브·SM·JYP·YG)의 MD(Merchandise) 매출은 2025년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7913억원에서 26% 늘어난 수준이다.
굿즈는 이미 K-팝 수익 구조의 중심축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K-팝 업계는 음반(원), 해외 투어, MD(굿즈), 콘텐츠 IP 등을 중심으로 매출 구조가 잡혀있다.
그중 MD는 기존 팝스타가 넘지 못하는 K-팝만의 확실한 수익원이다. K-팝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 슈퍼 팬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충성도 높은 팬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굿즈와 음반에 대한 반복 구매율이 높다. 기획사가 공략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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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
업계에서 MD(굿즈) 매출이 차지하는 지분이 상당하다. 4대 기획사의 MD·라이선싱 매출은 전체 매출의 19~31%가량 차지한다. 지난 2분기 기준 하이브는 전체 매출 7057억원 중 MD·라이선싱 매출이 1529억원(매출 비중 21.7%), SM은 3029억원 중 639억원(21.1%), YG는 1004억원 중 192억원(19.1%)이나 됐다. JYP는 특히나 놀랍다. 전체 매출 2158억원 중 MD·라이선싱 매출이 31%(669억원)로 비중이 가장 높았다.
K-팝 관계자들은 “K-팝에 있어 IP 비즈니스는 숙명”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대중음악계, 특히 K-팝 업계의 특수한 제작 환경 때문이다. 신인그룹 한 팀을 데뷔시키기 위해 인재를 발굴해 캐스팅하고, 트레이닝의 육성 과정을 거치는 동안 무려 100억원의 투자 비용이 들어가기에 투자 비용 회수가 어느 업계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연습생들이 숨만 쉬어도 물 새듯 돈이 나가는 만큼, 이 막대한 비용에 대한 회수 고민을 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K-팝 선구자인 SM엔터테인먼트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하이브까지, 4대 기획사를 중심으로 K-팝 업계의 IP비즈니스는 진화와 확장을 거듭했다.
IP 비즈니스는 다양하다. IP는 아티스트, 콘텐츠, 플랫폼 등 ‘지식재산권’으로 분류된 모든 것을 포괄한다. 대중음악계에선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이어가는 모든 영역이 IP비즈니스라 할 수 있다. 공연, MD, 자체 콘텐츠, 광고, 라이선스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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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블랙핑크의 런던 웸블리공연에서 빛나는 응원봉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K-팝 업계가 명실상부 ‘투어의 시대’에 돌입한 현재, 공연 매출은 각 사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수익원이다. 여기에 굿즈 매출은 투어와 한 쌍처럼 따라다닌다. 모든 기획사에서 K-팝 그룹의 투어를 진행하며 ‘공연용 굿즈’를 별도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굿즈 매출은 투어 횟수와 공연 관객 수에 비례한다. 이는 비단 K-팝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15년 만에 다시 뭉친 ‘브릿팝 황제‘ 오아시스는 월드투어를 진행하며 각 나라의 특색에 맞는 팝업스토어를 열어 각종 MD를 팔았다.
국내에선 최근 몇 년 사이 MD 사업이 각사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했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같은 상황에선 투어는 멈추게 되지만 MD는 아티스트가 움직이지 않아도 제작과 판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탄탄한 수익 모델”이라고 했다. SM에선 지난 1분기 주요 아티스트의 활동이 없었음에도 MD 및 라이선싱으로만 39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아티스트를 활용한 MD는 무한 확장 중이다. 과거엔 음반이나 공연 중심 MD가 주를 이뤘다면 현재는 다양한 기획형 MD가 등장하고 있다.
사실 모든 MD엔 탄생 이유가 있다. 팬덤의 ‘감성’을 건드려 그들의 지갑을 열리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아티스트든 콘텐츠든, 분명한 정체성이 살아야 IP비즈니스가 성공할 수 있다.
업계에선 K-팝 그룹이 세계관을 만든 이유 중 하나도 IP비즈니스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영웅이 태어나듯 그룹의 탄생 과정을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MD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굿즈 뿐만 아니라 웹툰, 웹소설로도 확장이 가능하다.
기획사에서 어떤 식으로든 머리를 짜내, 슈퍼 IP와 연결된 온갖 상품을 만들어 내지만, 사실 수요자의 마음을 얻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한 대형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팬덤이 굳건하면 아티스트가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비즈니스 영역 안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 다만 아티스트를 지나치게 상업화하는 느낌을 주거나, 돈을 벌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이거나 아티스트의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며 “그것은 잘못된 IP비즈니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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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릿과 ‘리틀 미미’ 컬래버레이션 MD [빌리프랩 제공] |
최근 눈에 띄는 것은 캐릭터 사업이다. 아티스트의 얼굴과 이름을 활용해 각종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다. 그룹 BTS가 출시한 캐릭터 브랜드 ‘BT21’, NCT위시의 ‘위시돌’, 트레저의 ‘트루즈’, 세븐틴의 ‘미니틴’, 보이넥스트도어의 ‘쁘넥도’,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뿔바투’가 대표적. 특히나 캐릭터 비즈니스는 최근 키링 열풍과 맞물려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7월 더현대서울에선 미니틴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팝업스토어를 진행, 13일간 누적 방문객 1만3000명의 기록을 쓰기도 했다.
젠지(Gen-Z) 세대 사이에 불고 있는 ‘꾸미기 열풍’을 업고, 완성된 형태의 굿즈를 넘어 팬이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참여형 굿즈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캐릭터 ‘리틀미미’와 협업한 걸그룹 아일릿의 굿즈가 대표적이다. 소녀들의 ‘인형놀이’를 겨냥, 키링 인형의 옷을 아일릿 앨범 의상으로 갈아입히도록 했다.
비단 팬덤만을 겨냥하는 것도 아니다. 의도적으로 아티스트의 이름과 정체성을 지운 뒤 라이프스타일의 전 영역으로 확장한 온갖 상품도 있다. 요즘 업계에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기획사는 하이브다. 컴백 때마다 다채롭고 기발한 굿즈를 내놓고, 특정 아티스트의 팬을 넘어 대중이 일상에서 소비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형의 MD를 내놓는다.
최근 타이틀곡 ‘스파게티’로 컴백한 르세라핌은 음악의 콘셉트와 굿즈를 연계, 파스타 면발을 재현한 이어폰, 스파게티 박스 형태의 앨범 패키지 등 콘셉트형 MD를 내놓으며 ‘굿즈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팬덤에겐 일체감, 소속감을 주면서도 대중에겐 팬은 아니지만 “사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올 수 있는 디자인이 전략 포인트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이전의 굿즈는 팬들만 쓰는 물건이었다면, 지금의 굿즈는 디자인과 실용성만 맞아떨어진다면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일반 대중과의 접점이 넓어졌다”며 “K-팝의 IP비즈니스의 최종 종착지는 팬덤을 뛰어넘어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와 산업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