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30분 간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영혼의 단짝’이 빚어낼 음악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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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리스트 게리 호프만(69)과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셀리그(68)는 40년간 함께 활동한 듀오로 5일부터 한국에서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을 갖는다.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40년 전 브람스 첼로 소나타의 첫 음을 데이비드가 연주했을 때 바로 알았어요. ‘이 사람이다’ 싶었죠.”
첼로 거장 게리 호프만(69)은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셀리그(68)와의 첫 연주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인연의 시간은 견고하다. 호프만은 “그렇게 느낀 이유는 나도 모른다”며 “전생일 수도, 살아온 환경이나 배움이 비슷해서일 수도 있다”고 했다.
장장 40년. 1986년 호프만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셀리그가 피아노로 호흡을 맡으며 둘의 인연은 시작됐다. 강산이 네 번은 바뀌었을 만큼 긴 시간을 함께해 온 것이다. 물론 그사이 둘은 각각 수많은 음악적 파트너가 있었다. 그럼에도 셀리그는 “많은 연주자를 만났지만, 게리는 최고의 파트너이자 특별한 사람”이라고 했다.
“게리는 내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발견하게 해요. 이상적인 음악이 무엇인지,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깊이 공감할 수 있고,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파트너죠.”
게리 호프만에게 이끌려 그는 30여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 1990년경, 게리 호프만과 데이비드 셀리그는 부산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셀리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현재의 선화예중에서 마스터 클래스도 진행했다”며 “달라진 한국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반면 호프만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얼마나 자주 왔는지는 셀 수도 없다”며 “올 때마다 한국 관객의 열정에 놀란다. 데이비드도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두 사람은 서울국제음악제의 일환으로 열리는 서울 공연(11월 5일)을 시작으로 광주(7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강릉(9일 강릉아트센터) 등으로 공연을 이어간다. 게리 호프만의 경우 일찌감치 한국을 찾아 서울국제음악제에서 두 번의 실내악 연주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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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리스트 게리 호프만(69)과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셀리그(68)는 40년간 함께 활동한 듀오로 5일부터 한국에서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을 갖는다.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
한국 리사이틀에선 두 사람이 2023년 발매한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 3년 전 서울국제음악제 당시 “한 번 더 한국을 찾아줄 수 있겠냐”는 류재준 음악감독의 요청에 다시 올 땐 베토벤 첼로 소나타를 하겠다고 호프만이 제안했다. 그에게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는 ‘일생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는 첼리스트의 입장에서 바흐의 무반주 전곡과 함께 레퍼토리의 큰 기둥 같은 작품이에요. 첼리스트에겐 성경(바이블)과 같죠. 어릴 땐 두려워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지만, 일생을 연주자로 살면 이 음악과 함께 하게 되죠.” (게리 호프만)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는 첼리스트는 물론 피아니스트에게도 특별하다. 클래식 음악계의 ‘혁신가’였던 베토벤이 이 곡을 쓰기 전까지 첼로를 위한 소나타는 세상에 없었다. 첼로는 전통적으로 반주를 담당하는 악기였지만, 베토벤은 이 악기의 독자성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게다가 피아노와 첼로의 ‘운명적 만남’을 성사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셀리그는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굉장히 많이 접하게 되는 곡”이라며 “음악의 진정성을 발견한 곡이 바로 베토벤 소나타와 교향곡이었다. 나의 음악적 사고와 세계의 중심에 바로 베토벤이 있었다”고 했다.
흥미롭게도 다섯 개의 첼로 소나타의 초기곡인 1, 2번에선 피아노의 역할이 첼로보다 압도적으로 크고 중요하다. 호프만은 이를 언급하며 “시기에 따라 피아노와 첼로의 역할이 달라졌다. 1, 2번에선 피아노가 훨씬 중요했지만, 5번으로 가면 1번에 비해 첼로의 역할이 10배는 중요해진다”고 귀띔했다.
특히 베토벤이 청력을 잃고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창작으로 고통을 극복한 시기에 쓴 3번 소나타(1807~1808)에 이르면 첼로가 솔로 악기로의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낸다. 소나타에서 첼리스트는 더블 스톱(double stop, 두 개의 현에 동시에 활을 대고 소리를 내는 기법)을 통해 풍성한 음색과 분위기를 만든다. 그 기법은 1번에선 단순한 음향 효과로 존재했다면, 3번에 이르면 멜로디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베토벤은 3번에 ‘눈물과 슬픔 사이에’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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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리스트 게리 호프만(69)과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셀리그(68)는 40년간 함께 활동한 듀오로 5일부터 한국에서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을 갖는다.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은 장장 2시간 30분(중간휴식 포함) 동안 연주된다. 호프만은 “그만큼 연주자에겐 체력적으로 도전인 공연이고, 청중에겐 굉장히 희소하고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며 “베토벤이 첼로와 피아노라는 악기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경험할 기회”라고 했다.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연주하고,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호프만은 ‘첼리스트의 첼리스트’로 불린다. 그는 밴쿠버에서 태어나 북미 출신 연주자 최초로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열다섯 살엔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데뷔했다. 호주 출신의 셀리그는 6세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초등학교 땐 첼로도 배워 누구보다 첼로라는 악기를 깊이 이해하는 연주자다. 2011년부터 파리리옹국립고등음원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40년의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연습을 통해 호흡을 쌓았다. 호프만은 “재능은 배울 수 없지만, 재능이 있든 없든 꾸준한 연습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연주도 없다”고 했다.
지난 주말 호프만은 리사이틀을 앞두고 듀오로 인연을 맺은 피아니스트 문지영과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의 연주를 관람하기도 했다. 셀리그와 연주할 공연장(예술의전당 IBK홀)을 미리 방문한 것이다. 그는 “내가 설 무대를 관객석에서 미리 본다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경험”이라며 “연주자라는 직업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공연장 2층 객석에도 올라가 무대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 공연장 어셔에게 야단을 맞아 “굉장히 겁이 났다”며 웃었다.
“연주자는 관객처럼 자신의 연주를 들을 수 있어야 해요. 하지만 자신의 연주를 객관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직접 공연장에 가서 관객으로서 경험하는 것은 연주자에겐 굉장히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경험이에요.” (게리 호프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