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친해지려…세르비아, 수도 문화유산 허물고 ‘트럼프家 호텔’ 추진

1999년 코소보 전쟁 때 나토 공습 당한 건물
“트럼프에 아첨하려 문화유산을 건드려?” 반대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현대 유적지인 ‘옛 군참모본부 단지. 코소보 전쟁 당시 나토 공습을 당했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세르비아 의회가 수도 베오그라드의 현대 유적지인 ‘옛 군참모본부 단지’를 허물고 그 자리에 트럼프 일가의 고급 호텔을 짓는 방안을 법으로 통과시키며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집권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고 세르비아 현대사의 상징과도 같은 유적을 없애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의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세르비아 의회에서 ‘옛 군참모본부 단지’의 문화유산 지위를 박탈해 건물을 철거한 자리에 ‘트럼프’ 브랜드를 단 5억 달러(약 7000억원) 규모의 호텔·아파트를 짓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7일(현지시간) 통과됐다. 법은 다음날인 8일부터 발효된다.

1965년 완공된 군참모본부 단지는 옛 유고슬라비아군의 총참모부 본부가 있던 곳으로 코소보 전쟁 당시인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의 유고슬라비아 폭격으로 크게 훼손됐다. 폭격 당시 모습이 현재까지 유지돼 당시 세르비아인이 겪은 충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에 세르비아는 2006년 이 건물을 문화유산으로 등록해 보존해 왔다.

그러나 이 부지에 트럼프 호텔을 들여놓겠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오랜 기간 제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직 정치판에 뛰어들기 전이던 2013년 처음 이런 구상을 떠올렸다고 전해졌다.

2024년 5월에는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측이 이 부지에 객실 175개를 가진 호텔과 1천500세대 주거단지를 들여놓겠다는 계획을 제시하자 세르비아가 승인했다.

그 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본부 건물의 문화유산 지위를 박탈해 계획의 걸림돌을 제거해줬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문화유산 지위를 박탈하는 과정에서 중요 문건이 위조됐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 계획에는 차질이 생겼다. 검찰은 문서 위조 등에 연루된 정부 관리들 상당수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이와 관련해 부치치 대통령은 “위조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이 상황에서 세르비아 의회의 과반을 차지한 집권당 세르비아진보당이 트럼프 호텔 추진을 밀어붙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호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쪽에서는 러시아와 서방 양쪽에서 모두 우호적 관계를 다져야 하는 상황에서 이번 프로젝트가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현재 세르비아산 제품에 관세 35%를 부과 중이다.

법안 발의자인 밀렌코 요바노프 의원은 “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회와 공간을 여는 것”이라며 “그것이 트럼프 정부, 미국과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지, 솔직히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NYT는 세르비아 검찰, 문화유산 옹호 단체, 야권, 학생들이 여권의 법안 추진을 규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야권 정치인은 총참모부 본부 건물에 대해 “저항의 상징, 산산조각이 난 국민·무너진 국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증거”라며 “오늘 당신들은 그저 트럼프를 기쁘게 하겠다며 그런 상징을 사치물로 바꾸려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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