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갈등은 ‘美 관여 의지’ 시험대…수사적 차원에 그쳐”

FT “중일 갈등으로 역내 세력 균형 미묘해져”
트럼프 4월 방중…中의 강력한 대일 압박 어려워


[로이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이 촉발한 중국과 일본 간 갈등이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 관여하려는 의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이번 갈등에서 동맹국에 대한 충분한 지원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서, 중국 입장에서 미국의 동맹국에 더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현지시간) 외교 소식통들과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번 중일 갈등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동맹국 일본에 얼마나 헌신하려는지, 또 아시아 지역의 긴장 고조에 관여할 의욕이 얼마나 있는지를 가늠할 핵심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7일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하원)에서 일본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대만 유사시’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 직후 중국은 외교부·국방부 등 정부 부처와 관영매체들을 동원해 연일 거친 비난을 쏟아내는 동시에, 자국민에 일본 여행·유학 자제령을 내리고 일본 영화 상영을 중단하는 등의 제재를 잇달아 내놨다.

FT는 이번 중일 갈등이 양국 관계뿐만 아니라 역내 세력균형 측면에서 미묘한 순간에 발생했다고 짚었다.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의 관세전쟁에서 보복관세와 희토류 수출통제 등으로 맞받아치며 1년간의 ‘무역휴전’을 끌어내는 등 달라진 체급을 증명했고, 군사적으로도 지난 9월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통해 북한·중국·러시아의 ‘반미 3국 연대’와 미국 타격이 가능한 최신 무기를 선보였다.

닐 토머스 미국 싱크탱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중국분석센터 연구원은 무역휴전으로 “중국은 미국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일본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서도 일본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미국의 지원은 수사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다.

토미 피곳 미국 국무부 수석 부대변인은 “일본이 관할하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포함, 미일 동맹과 일본 방위에 대한 우리의 공약은 확고하다”고 밝혔고, 조지 글라스 주일 미국 대사도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중단에 “중국의 전형적 경제적 강압으로, 동맹국인 일본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FT는 아시아 지역 내 미국의 동맹국 입장에서 볼 때, 일본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임에도 충분한 수준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일본에 강하게 대응하며 미국의 개입 의지를 시험할 수 있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주의적 동맹관과 그에 기반한 관세 압박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토머스 ASPI 연구원은 무역협정을 체결하려는 트럼프의 집착으로 “중국은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여지를 더 많이 얻게 됐다. 미국이 동맹국 방어에 뛰어들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벤저민 호 싱가포르 난양공대 라자라트남 국제대학원(RSIS) 중국프로그램 조교수는 “관세는 동북아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대한 미국의 헌신에 대해 일정 수준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싱크탱크 지경학연구소(IOG)의 국제관계 전문가 폴 나도는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과 동맹국 간 관계의 강도를 가늠해보고 싶어 할 것”이라며 “운이 좋았든 의도적이었든 간에 중국은 이번 일이 일본과 미국 사이의 틈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기회라고 판단해 면밀히 기록하려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일본을 압박하면서 호주 등 미국의 동맹국에 ‘대만 문제에 신중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양천 하이이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중국의 행보가 “단순히 일본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호주를 포함한 미국의 동맹국 시스템, 그리고 더 광범위한 아시아태평양 국가에 이른바 ‘대만 유사시’ 신중해야 하다고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4월 중국 방문을 예고한 상황에서 중국이 일본을 더 강하게 몰아붙이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토머스 ASPI 연구원은 이번 분쟁이 미국과의 무역휴전이나 트럼프의 방중 준비에 지장을 주는 것을 중국이 원하지 않는다며 “가장 유력한 전망은 일본이 어떤 형태로든 양보했다고 중국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현재 수준의 경제적 강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관측했다.

블룸버그통신도 미중이 이제 막 무역휴전에 들어간 상황에서 중국이 희토류 통제와 같은 보다 강력한 경제 제재 조치를 일본에 사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회장은 “(일본에) 희토류 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중국에 위험한 행보가 될 것”이라면서 “다른 무역파트너들은 대체 공급원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긴급해졌다고 보고 미국과 더 깊이 협력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필립 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경제프로그램 국장도 “중국이 일본에 희토류 카드를 쓴다면 예상 밖의 일이 될 것”이라면서 “중국은 세계의 제조 허브로 자리매김하려 노력하는 상황에서 신뢰할 수 없는 공급자로 비치는 것의 비용을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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