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사우디 빈살만 극진히 환대한 이유, 1조달러 대미투자 뿐일까[디브리핑]

미국·사우디, F-35 판매·원전 허용 등 원하던 바 챙겼지만
‘아브라함 협정’ 만큼은 보류…사우디 “두국가 해법” 고집
당초 아브라함 협정 조건 걸고 F-35 판매 고려했던 미국
사우디가 1조달러 투자하자 F-35 공급 화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회담을 진행한 후 국빈급 만찬에서 인사하고 있다.[로이터]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미국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미(對美) 투자를 1조달러(약 1450조원)로 늘렸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바라던 원전 허용과 F-35 전투기 구매를 포함한 방위협약을 얻어냈다. 전통적인 우방국 관계도 한층 돈독히 하며 윈-윈(win-win)한 것으로 보이는 양자 회담인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챙기려던 성과 중 한 가지가 빠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브라함 협정 가입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한 후 기자회견에서 아브라함 협정에 대한 질문에 “협정의 일원이 되기를 원한다”면서도 “동시에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위한 명확한 길이 보장되도록 확실히 하고 싶다”고 밝혔다. 빈 살만 왕세자는 기자들 앞에 나오기 직전에 트럼프 대통령과 이 문제에 대해 “건강한 논의”를 가졌다고 설명하면서 두 국가 해법 경로에 대해 “가능한 한 빨리 올바른 상황을 준비할 수 있도록 이 문제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왕세자의 발언 중 끼어들어 “확답(commitment)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는 아브라함 협정에 대해 매우 좋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하나의 국가 해법(one state)과 두 국가 해법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를 더 논의할 것이라면서, 빈 살만 왕세자가 “아브라함 협정에 대해 매우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간에 트럼프 대통령이 끼어들면서까지 희망적인 전망을 부여하려 했지만, 결론은 현재 상태로는 사우디가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허용해야 한다는 사우디의 종전 입장에서 변함이 없는 것이다.

지난 2021년 12월 12일(현지시간) 나프탈리 베네트 당시 이스라엘 총리(왼쪽)가 아부다비 국제공항에 도착해 압둘라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메리트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환영 인사를 받았다. UAE가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 이스라엘과 정식으로 수교하면서 이날 최초로 이스라엘 총리가 UAE를 방문하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됐다.[AFP]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과 아랍, 무슬림 국가들이 정식 수교를 맺어 중동의 불안한 정세를 잠재우는 프로젝트다.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집권기에 제안했던 것으로, 현재까지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의 국가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었다.

지난 6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들과 회담을 마친 뒤 카자흐스탄이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만찬 모두 발언에서 “위대한 지도자의 위대한 나라가 공식적으로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했다”며 이를 축하했다. 이어 “오늘 우리가 논의한 국가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일부 국가가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할 예정”이라며 “곧 매우 중요한 몇몇 국가들의 가입을 발표하게 될 것”이라 덧붙였다.

이 발언이 전해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브라함 협정 가입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그 기대는 실현되지 못했다.

트럼프의 간절한 바람에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브라함 협정을 외면한 것은 협정 당사자인 이스라엘과의 입장차가 전혀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있다. 사우디는 ▷신뢰할 수 있고 ▷시한이 정해져 있으며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경로가 있어야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 같은 입장에 반대하고 있다. 이스라엘 언론인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아랍 국가들의 두 국가 해법 요구를 “상징적이거나 수사적인 조치(more symbolic or rhetorical measures)로 해결될 수 있다고 경시(downplayed)해왔다”고 평가했다.

아브라함 협정에 들어간 UAE조차 “독립적이고 주권적인 팔레스타인 국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건설”을 중동평화의 기본 조건으로 지지해왔다. 팔레스타인은 정식 국가가 아니고, 앞으로도 될 수 없다 주장하는 이스라엘과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하며 ‘불편한 수교’를 이어오는 형국이다.

사우디는 트럼프의 아브라함 협정 가입 제안을 ‘막대한 투자’로 해결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사우디에 F-35 전투기를 판매하려 하자, 아브라함 협정 가입을 F-35 판매 조건으로 하라 요구해왔다. 사우디는 이를 수락하는 대신,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에 방문했을 때 제시했던 6000억달러(약 870조원)의 대미 투자금액을 1조달러(약 1450조원)로 늘리면서 F-35를 얻어냈다. 기존 입장은 고수하면서, 재력으로 이를 해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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