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 수어로…“핵추진 전달 진땀”

대통령실 첫 수어통역사 박지연
한미 팩트시트 발표 임기응변 대처
27년차 베테랑…‘전략적’ 표현 어려워


박지연 대통령실 수어통역사가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핵’이라는 표현의 수어가 없어 ‘ㅎ’, ‘ㅐ’, ‘ㄱ’이라는 글자를 손으로 써 주고, ‘잠수함’은 물 밑에서 배가 움직인다는 수어로 표현했어요. 하지만 ‘핵추진잠수함(핵잠)’은 ‘추진’이라는 표현을 대신해 ‘엔진’으로 설명했죠. 수어로 ‘추진’은 ‘어떤 일을 추진한다’는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려고 핵 다음에 엔진, 바로 잠수함을 써서 표현했어요”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로 꼽히는 한국의 핵잠 도입 추진을 수화로 전달한 박지연 대통령실 수어통역사의 설명이다. 대통령실 최초의 수어통역사인 박 통역사는 지난 7월 30일 대통령실에 임용된 이후 대통령실의 모든 브리핑을 수어로 통역하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25일 박 통역사를 만나 한미 정상회담 수어 통역 후일담을 들었다. 정부는 정상회담 이후 ‘핵잠’과 ‘원자력추진 잠수함(원잠)’ 용어를 혼용하다가 다시 ‘핵잠’으로 통일했는데, 박 통역사의 수어 통역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그는 “원자력은 전기 마크 모양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급박하게 생중계로 진행된 지난 14일 이 대통령의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발표 브리핑 때는 박 통역사의 갈고닦은 통역 실력이 빛났다. 그는 “제가 여태까지 쌓아온 통역 실력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대통령실에 와서 많은 정책 내용을 계속 읽고 공부하고 제 안에 습득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 “얼마나 큰 국가 현안이었고, 대단한 일이었는지 통역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27년 차 베테랑인 박 통역사도 대통령실 생활은 고전의 연속이었다. 1998년 수어를 처음 배웠고, 2008년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얻으면서 국회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브리핑을 수어로 통역했지만 ‘대통령실의 언어’는 달랐다.

박 통역사에게 가장 어려웠던 개념은 외교 용어로서의 ‘전략적’이라는 표현이었다고 한다. 정부는 각국과의 협력 정도를 동맹,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등으로 칭하는데, 박 통역사는 농인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는 ‘전략적’이라는 표현을 ‘군 관련’으로 해석했다. ‘전략적’ 용어를 쓰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 안보협력이 빠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는 “전략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사전도 찾아보고 고민도 많이 했다”면서 “포괄적인 안보 협력인 ‘전략적’이라는 표현을 ‘군 관련’으로 정했다”고 소개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또 럼 베트남 서기장을 국빈으로 맞이했을 때 베트남을 ‘사돈의 나라’라고 칭한 부분도 쉽지 않았다. 혼인한 두 집안의 부모들 사이에 서로 상대편을 이르는 말인 ‘사돈’은 말을 할 수 없는 농인들에겐 쓰이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박 통역사는 이 대통령이 베트남을 ‘사돈’으로 칭한 맥락을 읽었다. 그는 “베트남 여성과 한국 남성의 결혼이 많다는 의미를 중심으로 해설하고 ‘너무 소중해’라는 표현을 덧대 ‘귀하다’는 예우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문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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