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캐리 트레이드의 도화선, 선물환 순매도 사라져
블랙먼데이 같은 폭락 없어…은은한 충격에 그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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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시사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일단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사진은 우에다 가츠오 일본은행(BOJ) 총재 [로이터] |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일본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자 시장 일각에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거대하다고 짐작만 할 뿐 정확한 규모도 알 수 없는 천문학적 유동성이 일본으로 되돌아 가면서 시장이 휘청일 수 있다는 논리인데, 현재로썬 가능성이 크지 않다.
제1 근거는 엔화 선물환 순포지션이다. 지난해 블랙먼데이는 엔화의 기대 가치가 치솟으면서 엔화 선물환 ‘순매도(숏)’의 급격한 청산이 일어나 터졌는데, 엔화 선물환 순포지션은 8800억엔 ‘순매수(롱)’로 돌아섰다. 시장이 일찌감치 엔화 가치의 상승을 예견하고 있기 때문에 폭탄이 터질 가능성도 작다.
그렇다고 엔 캐리 트레이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없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캐리 트레이드는 장기 엔저를 타고 엄청나게 커진 상태로 남아 있고, 일본의 금리 인상은 캐리 유동성을 흡수하는 형태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보다 은근하고 오랫동안 시장을 누를 수 있다는 얘기다.
4일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2일 기준 엔화 선물환 투기적(비상업용) 순포지션은 7만400계약 순매수로 나타났다. 계약당 금액은 엔화로 1250만엔, 즉 8800억엔에 달하는 순매수가 현재 쌓여있다.
엔화 선물환 투기적(비상업용) 순포지션이란 헤지 목적이 아닌 투자·투기 목적으로 엔화 선물을 거래하는 선수들의 순포지션을 의미한다. 글로벌 자금이 향후 엔화 강·약세를 어떻게 예상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포지션은 지난해 중순만 하더라도 조 단위에 순매도가 시장에 쌓여 있었다. 한은이 앞서 제공한 비상업용 엔화 선물환 순포지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2일 기준 해당 순포지션은 2조3000억엔에 달했다.
즉 당시 블랙먼데이는 직전까지 시장이 엔화 가치의 상승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터졌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8월 1일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추가 인상까지 시사했다. 깜짝 소식에 160엔대까지 올라섰던 달러/엔 환율은 140엔대까지 수직으로 낙하했다. 자연히 선물시장에서 순매도가 터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엔화를 빌려 사뒀던 자산으로 일파만파 퍼졌다.
결국 파장은 환율을 넘어 주식시장까지 넘어왔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8월 5일 전장 대비 234.64포인트(8.77%) 하락한 2441.55에 거래를 마쳤다. 하락폭(종가 기준)은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3월 19일(133.56포인트)를 뛰어넘은 역대 최대 규모였다.
그런데 지금은 블랙먼데이의 첫 시작이었던 엔화 선물환 순포지션이 순매수 상태로 전환했다. 선물시장이 이미 엔화의 강세를 예견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이를 뛰어넘는 수준의 급진적인 깜짝 인상을 하지 않는 이상 불이 붙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전병하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미·일 금리 차 축소 기조 이어질 것이고 이는 순환적인 엔화 강세 요인이 될 가능성”이라면서도 “향후에도 제한적일 엔화 강세 폭과 경상 수급 변화를 고려하면 엔 캐리 청산에 대한 우려는 과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엔화 강세가 일정 부분 진행되어도, 해외투자 양상을 볼 때 가파른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말하기도 어렵다”며 “엔 캐리 청산의 대상으로 보기 어려운 직접투자(FDI) 비중이 늘어난 영향”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와 같은 급격한 충격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엔 캐리 트레이드라는 거대한 폭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장기 엔저 시대를 타고 늘어난 엔 캐리 트레이드는 분명 존재하고 일본의 금리가 올라갈수록 그 유인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유동성 공급의 핵심 중 하나였던 거래 기법의 하나가 사라지고 엔 캐리 자금이 일본으로 돌아가면 시장 전반에는 은은한 하방 압력으로 계속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선물환 측면과는 별개로 글로벌 은행에서 엔화로 빌려 투자한 자금이나, 이른바 ‘와타나베 부인’으로 대표되는 일본 거주자의 투자 규모가 서서히 축소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엔 캐리 트레이드의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온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규모는 범위와 정의가 달라서 딱 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한국은행 등에서는 자체적인 분석으로 짐작하고 있다.
지난해 한은은 전체 엔 캐리 자금의 총잔액을 총 506조6000억엔으로 추정했고, 이 가운데 6.5%(32조7000억엔)를 청산 가능 규모로 분석했다.
이중 비상업 엔화 선물 순매도 포지션(5000억엔)은 이미 순매수로 전환해 사라졌지만, 글로벌 은행의 엔화 대출 41조1000억엔 중 13조엔, 일본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 465조엔 중 19조2000억엔은 남아 있을 수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당장 오는 12월 일본은행이 금융결정회의에서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내년 초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확률은 매우 높다”며 “일본은행 인사들은 일본 성장률 및 물가 수준을 고려할 때 추가 금리인상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잇달아 밝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 국채 금리 상승세는 일단 유동성 측면에서 국내외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가뜩이나 미국 내 자금경색 현상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국채 금리 상승과 이에 따른 엔 가치 상승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마저 고조된다면 유동성 축소 리스크가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유동성 측면과는 별개로 우리나라 환율 측면에서는 일부 도움이 될 수 있다.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엔화와 동조성이 있는 원화 가치도 뛸 수 있다는 관측이다.
박 연구원은 “원과 엔간 강한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음을 고려할 때 엔화 강세 시 원화 강세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이러한 관측이 현실화하면 유동성 측면과는 별개로 환율 측면에서는 국내 주식 매력이 상승할 수 있다. 원화가 오를 것을 예상하고 국내 주식을 살 개연성도 있다는 의미다. 박 연구원은 “반도체 사이클과 더불어 원화 강세 폭 확대가 외국인 자금의 유입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해외 통화·채권·주식 등에 투자해 금리차(캐리)를 이익으로 얻는 투자 전략을 말한다. 평상시에는 안정적이지만 엔화가 갑자기 강세로 전환되면 해외 자산으로 번 수익보다 환차손(엔화 가치 상승)이 더 커지면서 수익 구조가 급격하게 무너진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엔이 더 강해지고 자산 가격은 더 떨어지는 연쇄 청산이 일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