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류’ KDDX, 공동설계안 재부상…“상생안으로 속도” vs “시간·비용 더 들 것” 팽팽

7.8조 KDDX 사업자 선정 연말로 또 밀려
‘공동설계’ 가능성 열려…양사 설계 협력 후 선도함 각자 건조
정치권, 기본설계서 2년째 멈춘 KDDX에 공동계약 요구

HD현대중공업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모형. [헤럴드DB]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방위사업청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방식 최종 결정을 연말로 재차 미루면서 ‘공동설계’ 방안을 처음으로 포함했다. 사업자 자격을 두고 경쟁 중인 HD현대중공업이나 한화오션 중 한 곳을 가리지 않고 협력하는 모델이다.

업계에서는 공동설계를 통해 2년 가까이 밀린 사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과, 공동설계 추진 시 오히려 시간과 비용이 더 소요될 수 있다는 주장이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방사청, KDDX 결론 미루고 ‘공동설계’ 가능성 열어


방사청은 지난 4일 방위사업기획·관리분과위원회(분과위)에서 KDDX 사업 추진 방식을 ▷수의계약 ▷경쟁입찰 ▷공동설계 3가지 안으로 압축했다. 각각 입찰 경쟁 없이 정부가 한 업체를 바로 선정하거나, 업체 간 경쟁을 거쳐 한 곳을 선정하는 것이 아니면 여러 업체가 설계부터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방사청은 당초 수의계약·경쟁입찰 사이에서 방식을 조율해왔는데 이번 분과위에서 처음으로 공동계약 방식을 선택지에 올렸다. 올해 들어서만 다섯 번째로 결론이 미뤄진 가운데 방사청은 이달 말 사업방식을 최종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총 7조8000억원 규모인 KDDX 사업자 선정은 지난 2023년 기본설계 이후 2년째 미뤄지고 있다. 공동설계가 새로운 안으로 유력하게 떠오른 이유다. 올해 초까지 “선도함(함정 사업에서 최초로 건조되는 선박) 공동설계는 전례가 없다”며 선을 그어온 방사청도 이번 분과위에선 입장을 선회했다.

“사업 2년째 지연…시간 없다” 정치권선 ‘공동설계’ 압박


한화오션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개념설계 모형. [헤럴드DB]


공동설계는 특히 KDDX 전력 배치를 앞당겨야 한다는 정치권이 강하게 요구하는 방식이다. 정치권 등에 따르면 최근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들은 방사청의 KDDX 선도함 건조 방향 설명회에서 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위 한 관계자는 “사업 계획대로라면 지금 건조까지 마치고 시운전을 하고 있어야 하는 시점”이라며 “양사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고 상생안으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맥락에서 공동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박진호 전 한국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은 미국 안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발표한 기고문에서 KDDX 사업을 언급하며 “미 해군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설계 및 공동생산 접근 방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지스 국산화 첫 시도…공동설계 ‘기술력 리스크’ 키울 것”


다만 업계에선 공동설계 방식에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KDDX 사업은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이뤄지는데, 통상 기본설계를 맡은 업체가 상세설계까지 맡는다.

그런데 상세설계 단계에서 새로운 업체가 들어올 경우 효율성이 더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윤정상 대한민국잠수함연맹 부회장은 “공동 작업은 개념설계나 기본설계에서 가능한 것”이라며 “기본설계에선 이미 대부분의 핵심 설계가 끝나기 때문에 상세설계에서 업체가 추가되면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KDDX는 기존 모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지스 체계를 모두 국산 기술로 처음 건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기술력을 확보하려면 한 회사가 주도권을 가지고 가야 한다”며 “공동설계는 기술력 부분에서 리스크를 키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지스란 레이더와 미사일 기술로 비행 공격에 대응하는 통합 전투 체계로, 미국 록히드 마틴이 개발했다. 이를 선체부터 전투 체계, 레이더 등을 모두 국내 기술로 전환하겠다는 게 KDDX 사업의 골자다. 이 때문에 기본설계를 맡은 전문성을 이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HD현대重·한화오션도 평행선…“방사청 결단해야” 지적도


두 업체 간 입장도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KDDX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맡았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이 자사와 수의계약을 맺고 한화오션이 협력업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 유출사건을 문제 삼아 경쟁입찰 혹은 공동설계를 주장해왔다. 한화오션은 공동설계를 할 경우 두 회사가 함께 상세설계를 수행한 뒤, 선도함 2척을 각각 건조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업체 간 입장이 팽팽하게 부딪히는 상황에서 방사청이 업체들에 결정을 미룰 것이 아니라 판단을 명확하게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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