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량 수입’에서 ‘전량 국산화’로 전환
연간 최대 250만명분 생산능력…국력 상승
전세계 ‘탄저 공포’ 계속…글로벌 보건 위상↑
후속 연구 착수…전향적인 비축 예산 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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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병관리청과 GC녹십자가 공동 개발한 세계 최초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 탄저백신 ‘배리트락스주’의 샘플 모습. 화순=최은지 기자. |
[헤럴드경제(화순)=최은지 기자] 8일 오후 전남 화순에 위치한 GC녹십자 공장. 플루(독감백신)관, 수두관 등 백신 제조시설 한쪽에 마련된 ‘탄저관’이 언론에 공개됐다. 300평 면적의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존재감은 남달랐다.
이곳은 28년 숙원 끝에 개발에 성공한 세계 최초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 탄저백신 ‘배리트락스주’의 생산기지다. 이로써 GC녹십자 화순공장은 한국에 없어서는 안 될 백신 제조시설로 자리매김했다.
연간 최대 1000만도즈(250만명분)를 생산할 수 있는 국력을 자랑하는 탄저관은 100억원을 들여 2019년 준공된 후 6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일’을 시작했다. ‘국산 39호 신약’으로 기록된 탄저백신 배리트락스주가 생산을 시작해 이날 질병청 비축 백신으로 첫 출하됐다.
이전까지 비축하고 있던 수입 탄저백신이 모두 올해 유효기간이 끝나면서, 이제 질병청이 보유하는 탄저백신은 모두 GC녹십자가 생산한 배리트락스주다. 지난 4월 품목허가를 획득한 후 8개월 만에, 마침내 탄저균 테러 대응에 필수 의약품으로 ‘국산 백신’의 국가 비축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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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 탄저백신 ‘배리트락스주’. 28년의 연구개발 끝에 8일 국내에 첫 출하됐다. [질병관리청 제공] |
탄저백신은 탄저 테러 공격을 막는 ‘방패’인 만큼 매우 중요한 전략물자다. 그러나 호흡기 탄저 감염 시 치명률 97%에 달할 정도로 위험해 연구 자체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탄저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 등 극소수뿐이다.
‘배리트락스주’는 기존 해외의 백신과 달리 독소 성분을 배제하고 방어 항원 단백질만을 사용한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 백신으로, 부작용의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낮추어 안정성을 극대화했다. ‘3세대 K-백신’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배리트락스주 비축으로 한국은 생물테러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한 ‘필수 방어 무기’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비용도 획기적으로 아껴 안정적인 백신 주권을 확립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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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GC녹십자 화순공장에서 열린 국산 탄저백신 첫 출하 기념식에 임순관 질병관리청장(왼쪽에서 네번째)과 정재욱 GC녹십자 R&D 부문장(호른쪽에서 세번째), 관계자들이 커팅식을 하고 있다. [질병관리청 제공] |
이날 GC녹십자 화순공장에서 열린 배리트락스주 첫 출하 기념식에는 GC녹십자 관계자들은 물론,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을 비롯한 질병청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정부 관계자들이 민간기업의 백신 첫 출하를 직접 축하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관계자 모두가 버선발로 달려온 이유는 ‘국산 탄저백신’ 출하까지 질병청과 GC녹십자의 동행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1997년 국립보건원(현 질병청) 시절부터 시작된 기반 연구는 2002년 GC녹십자가 공정 개발과 임상 시험을 담당하며 이어갔다.
임 청장은 “국산 탄저백신의 첫 출하는 국가기관과 민간기업이 긴밀한 협력으로 이뤄낸 국가적 성과”라며 “이번 성과가 국내 백신 산업의 기술적 역량과 생산 기반을 강화해 국가 보건 안보 및 바이오산업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은철 GC녹십자 대표는 “질병청과 공동 개발한 국산 탄저백신의 첫 출하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국가 방역 역량 강화 및 백신 자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욱 GC녹십자 R&D 부문장은 “‘만들기 힘들지만 꼭 필요한 의약품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오늘 그 결실을 맺었다”며 “위기 상황 시 GC녹십자가 국내와 글로벌에 공헌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우수한 제품을 확보하게 된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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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이 8일 GC녹십자 화순공장에서 국산 탄저백신 ‘배리트락스주’ 첫 출하를 축하하고 있다. [질병관리청 제공] |
국가기관과 민간기업이 30여년 가까운 시간 동안 협력이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국산 탄저백신’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탄저균은 기침 등으로 전염이 없고, 장기간 생존이 가능해 공기 중 살포가 쉬우며, 치명률이 97%에 달해 특정 인물을 암살하는 데 활용하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직접 살포하는 테러 물질로 개발됐다. 우리나라는 2000년 8월 1급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특히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생화학무기’에 대한 방어 태세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은 탄저병, 보툴리누스 중독증, 콜레라 등 병원체 13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탄저균과 천연두 바이러스를 생화학 무기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탄저백신은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테러에 대비해 비축하는 전략물자의 성격이 강해 원하는 만큼 구할 수도 없고, 가격도 비싸다.
탄저백신을 자체 생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테러 세력에게는 상당한 위협이 된다. 필요시 즉시 생산해 대량 공급할 수 있는 능력만으로 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김갑정 질병청 진단분석국장은 “기준에 백신을 수입하려면 수량이나 일정 조율 등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국내 기술로, 국내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면 우리가 필요할 때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 안보 측면에서 상당히 역량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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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산 탄저백신 ‘배리트릭스주’가 질병관리청 비축 물량으로 8일 첫 출하했다. [질병관리청 제공] |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탄저병 발생보고는 없다. 미국에서는 2001년 일부 테러리스트들이 ‘백색가루’를 넣은 우편물을 전역에 보내 22명이 호흡기·피부 탄저에 감염됐고 5명이 사망했다.
전 세계는 여전히 ‘탄저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탄저균은 불리한 환경조건에서도 장기간 생존이 가능해 사라지지 않는다. 2023년 잠비아에서는 600명 이상이, 2024년 우간다에서는 251명이 탄저에 감염된 소를 먹거나 사체에 접촉해 감염됐다. 태국과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올해 탄저병으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리트락스주가 글로벌 보건 안보 위상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비병원성 탄저균을 직접 사용하는 기존 백신과 달리, 탄저 독소의 주요 구성 성분인 방어 항원(Protective Antigen) 단백질만을 발현 및 정제해 안전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실제 임상시험에서 우수한 안전성과 강력한 면역원성이 입증됐기 때문에, 기존 백신보다 강점을 갖고 있다.
국산 탄저백신 생산이 가능해진 만큼, 보다 전향적인 비축 예산이 필요하다. 2026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탄저백신 구입 예산은 올해보다 대폭 삭감된 32억1100만원이다. 전략물자의 성격이 강한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리트락스주는 유효기간 24개월로 품목허가를 받았다. 관련법에 따라 5년간 품목 유지 갱신을 위해 추가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정윤석 질병청 고위험병원체분석과장은 “장기 면역원성 평가와 추가 접종 시기 산정, 호흡기 감염 시 방어 능력에 대한 평가,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 제형에 대한 안정성 연구 등을 추가 연구로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