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낙인 아닌 제도적 지원 필요
25살에 필로폰을 처음 접하고 12년 중독돼 있었던 남명진(가명, 남)씨. 그에게 단약(마약을 끊는 일)에 성공했느냐고 물었더니 “단약에 성공한 사람은 없다. 죽을 때까지 단약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 번 약물 중독을 경험한 이들이 온전하게 그 기억과 습관으로부터 빠져나오기는 그만큼 힘들단 얘기였다.
명진씨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마퇴본부)에서 자조모임(NA 모임) 사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NA는 마약 중독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고 있는 중독자들이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자기 경험과 극복 의지를 털어놓고 연대하는 모임이다. 지난 9월 취재 목적으로 참관을 허락받고 기자도 모임에 참여했다. 35여명의 참석자는 처음엔 어색해하는 눈치였지만, 이내 진지하게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주변의 믿음-‘중독의 늪’ 탈출 필수 조건
마약 중독에서 빠르게 벗어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 가족의 헌신과 지지, 신뢰 같은 이른바 ‘지지 자본’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영향력이 크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중독’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모여서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고 경청하는 NA 모임의 존재 가치는 여기에 있다.
마약 중독자들을 연구하는 곽민정 고려대 두뇌동기연구소 연구교수는 “중독에서 벗어나는 재활과 회복은 자기 의지만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다”면서 “주변에 아무도 없는 사람들은 출소한 다음에도 한두 달 뒤에 거의 약을 다시 접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중독자들이 서로를 돌보는 자조모임은 마퇴본부 외에도 인천참사랑병원, 국립부곡병원 같은 마약 중독 치료보호기관에서도 연다. 서울 은평병원에 설치된 마약관리센터도 마약을 끊고 회복하려는 이들의 모임을 열고 있다.
최진묵 인천다르크(DARC·마약중독재활센터)센터장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자조모임이 많이 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약 없이 살도록, ‘제도적 지지’도 필요
주변의 인간관계가 가져다주는 정서적 지지와 더불어 ‘제도적 지지’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마약을 투약하거나 팔지 않아도 어엿한 경제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어야 한다. ‘마약사범’으로 낙인이 찍혀 생계를 꾸려갈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면 재발 우려는 뛴다.
곽 교수는 “마약을 투약했거나 유통했던 사람은 재취업이 힘들다”면서 “배달 라이더조차 할 수 없으니 현실적인 절망을 경험하면 다시 마약의 세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조성남 서울시마약관리센터장은 “치료를 잘 마치고 사회에 복귀하려고 해도 마약 전력이 낙인이 되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그러니 마약에 다시 손을 대는 경우를 본다”고 했다.
한때 마약에 중독됐던 이들 중에는 사회복지사를 공부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취재팀은 NA모임에서도 10년 넘게 단약을 잘 지키면서 마약중독 예방지도사로 활동하는 참가자를 만났다. 이 외에도 ‘백색가루의 종착지’ 취재를 하며 만난 사례자 중에서도 사회복지사를 공부하는 이들이 있었다.
NA모임을 꾸려 나가고 있는 남명진 씨는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는 “기소 유예든 징역을 살았든 마약 전과가 발목 잡아서 구직이 안 되는 20대 젊은이들이 돈 벌 방법은 없고 약 하고 싶으면 드라퍼 같은 마약 판매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준규·이영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