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로 망했다…곡소리 헬스장 1월 신규 회원 ‘제로’ [세상&]

‘극단적 경쟁’ 내몰린 헬스장 업계
신규 개설, 폐업 모두 증가 추세
헬스기구 매입 업체는 ‘공간부족’
불황에 비만치료제 각광으로 외면


2일 오전 강남역의 한 헬스장의 모습. 정주원 기자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예전에는 한 달 평균 10~15명 정도는 신규 회원 문의가 있었는데 1월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종로1가에서 13년째 퍼스널 트레이닝(PT) 전문 헬스장을 운영해 온 한 트레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종로의 한 상가 건물 두 개 호수를 합쳐 운영해 오던 헬스장 규모를 절반으로 줄였다. 한 개 호수는 다른 업장에 넘기고 현재는 축소 운영 중이다.

이 트레이너는 “작년 11월부터 신규 문의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보통 연초와 1분기가 성수기라고 하지만 그 공식도 이제는 완전히 깨진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늘어난 개업, 더 빨라진 퇴장 “공급 과잉이 불황 키웠다”


‘헬스장’으로 통하는 체육관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사라지고 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지만 통계가 그걸 보여준다. 헬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헬스장은 점점 늘어나 경쟁은 과열되지만 결국 되는 곳만 되는 구조”라고 말한다.

7일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강남구 스포츠클럽(보디빌딩·체력단련·단전호흡 시설) 수는 지난해 1분기 603개→ 2분기 645개→ 3분기 707개로 늘었고, 종로구 역시 지난해 1분기 86개→ 2분기 92개→ 3분기 103개로 지속해서 증가했다. 신규 개업 수 역시 급증했다. 2023년 3분기 127곳이던 서울 전체 신규 개업 스포츠클럽 수는 지난해 3분기 658곳까지 늘었다.


반면 동시에 기존 운영하던 곳들의 폐업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 전체 스포츠클럽 폐업 수는 지난해 1~3분기 309곳으로 2024년 같은 기간(292곳), 2023년(278곳)보다 많았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폐업한 체력단련장업은 553곳으로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였던 2024년(567곳)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흐름의 핵심 원인으로 일단 ‘과잉 공급’을 꼽는다. 흔히 말하는 헬스장 외에도 필라테스, 크로스핏 등 실내 체육 시설이 최근 수년 사이 크게 늘었다. 종각역 인근의 한 헬스장 트레이너는 “생활체육 업계는 진입 장벽이 낮아 트레이너로 일하다가도 자기 센터를 차리려는 사람이 계속 늘었다”며 “공급은 급증했는데 소비 여력은 줄어들면서 경쟁이 극단적으로 치열해졌다”고 설명했다.

중고 기구가 말해주는 ‘조용한 폐업’과 가격 양극화


중고로 나오는 헬스 기구들은 늘어난다. 매입·판매업체들은 최근 들어 매물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에서 중고 헬스 기구 매입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씨는 “폐업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업계에서 계속 들린다”며 “요즘은 개인 직거래 플랫폼이 워낙 활성화돼 기구를 하나씩 나눠 파는 경우도 많아졌지만 임대차 계약 만료나 자금 압박으로 짧은 기간 안에 헬스장을 한꺼번에 정리해야 하는 관장들은 결국 매입업체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러닝머신이나 웨이트 기구 몇 대를 개인에게 팔아서는 철거와 이전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보니 급한 경우에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일괄 매각을 선택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PT 전문 헬스장의 모습. 지난해 11월부터 반쪽만 축소 운영하고 있다. 정주원 기자


실제 매입 현장에서는 문의 채널과 물량 모두가 빠르게 늘고 있다. 헬스 기구 매입 전문 A스포츠 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매매 문의가 하루 한 통 정도였다면 요즘은 하루 세 통 이상이 꾸준히 온다”며 “블로그·오픈카톡·인스타그램·전화까지 문의 채널은 다양하다”고 말했다.

헬스장뿐 아니라 필라테스 폐업 문의도 급증하면서 해당 업체는 필라테스 기구 매입 글을 내렸음에도 “하루 한두 통 정도는 여전히 문의 전화가 온다”고 했다.

처분하는 기구가 늘어나니 보관 공간도 부족하다. 한 업체 관계자는 “매입 기구가 늘어나면서 용인에 있던 창고를 지난해 9월 30평에서 50평으로 넓혔지만 포화 상태”라며 “매입한 기구들은 카자흐스탄 등으로 수출하는 비중을 늘리며 물량을 조절하고 있다”고 했다.

헬스장과 기구 수리업체를 동시에 운영하는 또 다른 전문업체 관계자는 “특히 지난해 10월 이후부터 폐업이나 정리를 고민하며 연락해 오는 헬스장 관장들이 체감상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가격 전략은 지역과 상권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강남역 인근 H헬스장은 고정비 부담을 이유로 1년 회원권 가격을 전년 대비 14만8000원 인상했다. 이곳 관리자 이모 씨는 “회원권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대신 장비를 교체하고 샤워 시설·락커 등 편의성을 강화해 가격 인상에 대한 이탈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강남역 인근의 B헬스장 트레이너는 “연간 회원권 100만원 이상의 프리미엄 헬스장을 제외하면 가격 인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며 “강남 지역의 회원권이 불과 1년 전만 해도 평균 50~60만원대였는데 최근에는 30만 원대까지 내린 곳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해당 트레이너는 “PT 가격은 쉽게 내리기 어려워 헬스장 이용권을 인하할 수밖에 없다”며 “인구 밀도가 높거나 전반적으로 부유한 지역이 신규 개업률도 높은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지역 상권에 따라 살아남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위고비·마운자로까지 겹쳐…“이제 되는 곳만 된다”


헬스장 업계는 극단적 경쟁과 더불어 여러 사회적 요인으로 역대급 불황의 시절을 지나고 있다. 헤럴드경제가 만난 헬스장 업계 관계자들은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 ▷무분별한 창업으로 인한 공급 과잉 ▷시설·관리 부실로 인한 소비자 불신 ▷위고비·마운자로 같은 비만 치료제 등장에 따른 수요 이탈 등 네 가지 요인을 꼽았다.

강남역 H헬스장 관계자는 “헬스장은 필수재가 아니라 소비재 성격이 강해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줄이는 지출”이라며 “여기에 경쟁 업체가 과도하게 늘면서 할인 경쟁과 투자 부담이 동시에 커졌다”고 말했다. 체중 감량 효과를 앞세운 치료제와 러닝 열풍, 크로스핏·서킷·복싱 등 투자 부담이 적은 대체 운동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전통적인 헬스장이 체감하는 타격은 더 커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헬스장의 모습. 한 회원이 런닝머신을 타고 있다. 정주원 기자


이 같은 변화는 지역별로도 온도 차를 보인다. 강남권은 여전히 유동 인구와 소비 여력이 뒷받침되면서 가격 인상과 고급화 전략으로 버티는 곳이 있지만, 종로 등 대부분의 상권에서는 가격을 올리기 어려워 공간 축소나 조용한 폐업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대체재가 늘어난 만큼 되는 곳만 되는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황진주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겸임교수는 “과거에는 헬스장이라는 공간을 소비했다면 지금은 몸이 좋아지는 결과를 중심으로 소비가 재편되고 있다”며 “홈트·운동 앱·소셜미디어 콘텐츠 등 대체 수단이 늘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꼭 헬스장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 교수는 “불황기에는 시간과 비용 대비 효율에 더 민감해지기 때문에 비용 대비 효율이 낮다고 인식되는 헬스장이 외면받기 쉬운 구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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