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6년차인데 왜 이러나…공수처, 현직 판사 구속영장 또 기각[세상&]

‘재판거래’ 의혹 현직 판사 구속영장 기각
법원 “주된 공여 부분에 대한 소명 부족”
출범 6년차 공수처…수사 역량 도마 위
영장 발부 단 2건…윤석열·문상호 뿐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모습.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양근혁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역량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현직 판사와 변호사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모두 ‘혐의 소명 부족’으로 가로막히면서다. 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의 발부율이 전체 구속영장 발부율과 비교해 현저히 낮다는 점에서 출범 6년차를 맞았으면서도 여전히 수사 기관으로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법원에 따르면 김진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23일) 고교 동문끼리 금품을 주고 받으며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A부장판사와 B변호사에 대한 영장심사를 진행한 뒤 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김 부장판사는 기각 이유에 대해 “주된 공여 부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가 있는 경우를 구속의 요건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이같이 밝힌 것은 구속의 기본 요건이자 첫번째 요건인 ‘혐의 소명’부터 막혔다는 뜻이 된다.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대한 법원 결정은 기본적으로 유무죄 판단이 아니라 구속 수사의 타당성을 가리는 절차지만, 적어도 본격 수사 착수 이후 해당 시점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에 대해 검토하고 판단한 결과라는 점에서 혐의 소명 정도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부터 법원에서 인정되지 못한 것이다.

앞서 공수처 수사2부(부장 김수환)는 지난 18일 A부장판사에 대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현직 판사가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지난 2016년 불거진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사건 관련 김수천 전 부장판사 이후 10년 만으로, 공수처 출범 이후로는 최초다. A부장판사와 고교 동문인 B변호사에 대해선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해 함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A부장판사는 2023~2025년 전주지법 근무 당시 고교 동문인 B변호사로부터 현금과 아들 돌반지, 배우자 향수 등 370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B변호사가 주주로 있는 회사가 소유한 건물 일부 공간을 무상으로 빌려 자신의 아내 바이올린 교습소로 사용했다는 혐의도 있다. 공수처는 무상 임차 이익을 포함한 전체 뇌물수수 액수가 수천만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공수처는 A부장판사가 B변호사가 수임한 사건 20여건을 맡아 1심에서 실형이나 집행유예 등이 선고된 형을 항소심에서 감형해 줬다고 의심하고 있다. 반면 A부장판사 측은 입장문을 통해 “공수처가 무리하고 탈법적인 수사를 진행하다가 증거를 왜곡해 무리하게 구성한 혐의 사실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해 9월 A부장판사와 B변호사의 자택과 사무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공수처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두 사람이 변론기일이나 선고기일을 전후해 수시로 연락한 기록을 확보했고, 이 내용을 구속영장 청구서에도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가 두 사람의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향후 수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공수처의 수사 역량에 대한 의문이 함께 일고 있다. 공수처의 저조한 영장 발부율에 대한 지적은 2021년 기관 출범 이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공수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8건의 구속영장을 청구해 단 2건만 발부되면서 발부율은 25%를 나타냈었다.

구체적으로는 2021년 2건, 2023년 3건의 구속영장을 청구해 전부 기각됐고, 2024년에 청구한 2건 중 1건이 최초로 발부됐다. 그 대상은 12·3 비상계엄 사태에 연루된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이었다. 지난해에는 12·3 비상계엄 선포의 당사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이 인용했다. 윤 전 대통령과 문 전 사령관을 제외하면 구속영장 청구가 모두 기각된 것이다.

공수처가 청구한 영장의 발부율은 연평균 80% 전후로 집계되는 전체 영장 발부율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해 9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4년 전국 법원에 청구된 구속영장 청구 건수는 2만7948건이고, 이중 2만1488건이 발부돼 발부율은 76.9%였다. 공수처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해 인용된 발부율에 3배에 달하는 수치다. 공수처의 영장 발부 성적표는 검찰과 비교해도 저조하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 2만7897건 중 2만1862건이 법원에서 인용됐다. 발부율은 78.4%였다.

공수처 관계자는 A부장판사와 B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된 것과 관련해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다만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와 진술을 통해 혐의 상당 부분은 확인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해서 향후 수사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이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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