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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의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고객 차량에 기름을 채워넣고 있다. 이란 전쟁의 여파로 연료 수급난 우려가 높아지면서 슬로베니아가 유럽연합(EU) 국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연료배급제를 실시했다. 슬로베니아 내에서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 오는 ‘연료관광’이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AFP] |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위기가 확산되면서 연료 배급제를 실시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의 무(無)국경 정책을 활용한 ‘연료 관광(fuel tourism)’이 연료난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슬로베니아는 지난 22일(현지시간) 유럽연합 국가 중 처음으로 연료 배급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연료배급제 시행에 따라 슬로베니아의 일반 개인 운전자는 하루 최대 50ℓ까지만 연료를 살 수 있다. 기업과 농민에게는 하루 200ℓ까지 한도가 적용된다.
슬로베니아 정부는 시장의 불안을 우려한 듯, 연료난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데 집중했다. 로베르트 골로프 슬로베니아 총리는 22일 “슬로베니아에는 충분한 연료가 있으며, 저장고는 가득 차 있고 연료 부족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슬로베니아가 연료 배급제까지 시행하는 배경에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 넘어오는 ‘연료 관광’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오스트리아 운전자들이 더 저렴한 슬로베니아의 연료를 구매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연료 쇼핑에 나서는 일이 잦다.
BBC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에서 휘발유 1ℓ 가격은 23일 기준 1.8유로(약 3126원)다. 디젤은 2유로(약 3473원)에 가까워지고 있다. 반면 슬로베니아에서는 휘발유가 1ℓ 당 최대 1.47유로(약 2553원), 디젤은 1.53유로(약 2656원)로 훨씬 저렴하다. 일부 오스트리아 운전자들은 슬로베니아의 저렴한 연료를 이용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 번거로움도 감수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극우 정치인인 자유당 대표 헤르베르트 키클은 자신이 연료 관광을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로 올리며 자국의 고물가를 비판하기도 했다. 키클은 게시물에서 “우리가 이렇게까지 살아야, 많은 사람이 생계 비용을 줄이려고 외국에 가야만 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슬프지 않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연료 배급제까지 실시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슬로베니아인들은 연료 관광을 오는 이들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외국인들이 슬로베니아로 몰려드는 바람에 주유소 대기가 늘어나고, 정작 슬로베니아인들이 연료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석유 유통 기업에 외국 운전자에 대해서는 공급량을 더 엄격하게 제한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연료 관광은 슬로베니아 외에도 유럽연합 내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독일 운전자들은 연료비가 더 저렴하면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로 연료 관광을 나서는 경우가 많다. 이란 전쟁이 길어지면서 에너지 위기가 심화되면, 연료 관광에 대한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