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사용자성 ‘연쇄 인정’…공공부문 교섭지형 흔든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다섯 번째 판단
산단공도 사용자 판단…“실질 지배·결정권 인정”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 첫날인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집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 등이 행진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이른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공공부문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이 잇따르면서 교섭 지형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기관이라면 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 누적되며, 공공기관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7일 노동계에 따르면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을 상대로 제기된 ‘교섭요구 사실 공고 시정’ 사건에서 공단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인용 판단을 내렸다. 노조법 개정 이후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된 다섯 번째 사례다.

이번 판단의 핵심은 ‘형식적 계약 관계’가 아니라 ‘실질적 지배력’이다. 지노위는 산업단지공단이 자회사를 통해 시설·입주업체 관리 업무를 수행하면서, 용역계약과 과업지시를 통해 노동자들의 노무단가, 업무 범위, 인력 배치, 근무형태 등 근로조건 전반에 관여해 왔다고 봤다. 이에 따라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만큼 사용자로 인정된다는 판단이다.

앞서 지난 2일에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4개 공공기관에 대해 유사한 취지의 사용자성 인정 판단이 내려진 바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공공부문에서만 연쇄적인 판단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노동계는 이번 판단을 계기로 공공기관뿐 아니라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까지 교섭 요구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공공연대노조는 “사업 지침과 예산을 통해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주체라면 사용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공단은 즉각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고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생활지원사, 아이돌봄, 장애인활동지원사 등 이른바 ‘돌봄·생활서비스 노동자’의 경우, 각 부처와 지자체가 사업 지침을 통해 업무 방식과 임금·처우를 사실상 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용자성 논란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는 이를 근거로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중앙부처를 상대로도 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실제 교섭에 나선 사례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계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대응이 향후 민간 영역으로의 확산 여부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공부문에서 사용자성이 구조적으로 인정될 경우, 대기업 원청과 하청 간 관계에도 동일한 법리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와 사용자 측은 사용자 범위 확대가 노사관계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 ‘실질적 지배력’으로 넓어질 경우, 계약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사용자성 판단이 속도를 내면서, 원청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노사 간 충돌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