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총(王叢ㆍ31) 화처(華策ㆍ화책)미디어 부사장 겸 최고전략책임자가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1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5 국제콘텐츠콘퍼런스’에 참석, 한·중 합작 콘텐츠의 현황과 전망을 밝혀 업계 관계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중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중 하나인 화처미디어는 드라마 뿐 아니라 영화, 예능 프로그램 등으로 서비스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중국 시장은 열려 있지만, 수요자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은 까다롭다.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모은 화제작도, 중국에 건너가면 흥행이 시원찮은 경우가 많았다. 국내 박스오피스 최고 흥행작인 ‘명량’은 2600만 위안(한화 약 47억 원), 올해의 화제작 ‘암살’은 5000만 위안(약 91억 원) 수준이었다. 그나마 성적이 가장 괜찮았던 ‘설국열차’가 7400만 위안(약 135억 원)의 수익을 냈다. 중국 블록버스터 ‘몬스터 헌트’가 약 24억 위안(4500억 원)을 벌어들인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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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왕총 화처미디어 부사장이 ‘2015 국제콘텐츠콘퍼런스’ 참석 차 한국을 찾았다. 화처미디어가 지난 달 국내 투자배급사 NEW와 합작법인을 설립한 데 대해 왕 부사장은 “양사가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사람들을 감동시키겠다는 생각이 같았다”며, “합작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은 한국의 제작 경험을 전수받고, 한국은 중국 현지화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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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월 5일 부산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NEW와 화처미디어의 합자법인 출범식 |
반면 한중 합작 영화들은 성적이 좋은 편이다.
중국판 ‘수상한 그녀’로 알려진 ‘20세여 다시 한번’은 화처미디어와 CJ E&M이 공동투자해 제작했다. 올해 초 박스오피스 수입 3억 위안 돌파, 중국에서 개봉한 한·중 합작 영화 중 최고 성적을 썼다. ‘블라인드’를 리메이크한 한중 합작 스릴러 ‘나는 증인이다’(문와쳐, 뉴클루즈 필름 제작)도 지난 달 30일 개봉해 흥행 중이다. ‘나쁜 놈은 반드시 죽는다’, ‘엽기적인 두 번째 그녀’, ‘역전의 날’ 등의 합작 영화도 줄줄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판타지 스릴러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중국에서 인기인데, 그간 한국 영화가 경쟁력을 쌓아온 분야죠. 한중 양국이 협력할 기회가 점차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드라마 역시 소재나 아이디어 면에서 경쟁력이 있어요. 중국에서 인기 있는 상위 10위 한국 드라마를 보면, 열혈 팬들의 관심도가 미드 이상이죠. 예능 프로그램의 상업적 가치는 드라마와 영화를 뛰어넘어요. 광고 수익만 봐도 알 수 있죠.”(왕총)
물론 합작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있어 도전 과제도 많다고 왕 부사장은 말했다. 중국이 영화의 소재 등에 대한 심의가 까다롭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 지가 관건이다. 출연진이나 제작진을 꾸리는 데 있어 한중 양측의 의견이 엇갈릴 때도 있다. 이를 좁혀가는 것도 과제다. 덧붙여 중국 관객의 정서를 고려한 ‘현지화’도 필요하다. ‘20세여 다시 한번’의 경우, 한국판에는 없는 마작을 하는 장면이나, 공원에서 단체로 아침 체조를 하는 장면 등 현지의 일상 풍경이 포함됐다.
최근 화처미디어는 국내 투자·배급사 뉴(NEW)와 손잡고 중국 합작법인 화처허신(화책합신)을 설립했다. 강풀 웹툰 원작의 ‘마녀’, 중국판 ‘뷰티 인사이드’, ‘더 폰’ 리메이크작 등을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 함께 한 김형철 뉴 한국영화사업부 본부장은 “화처미디어가 콘텐츠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비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합작법인을 꾸린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이날 중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콘텐츠 기업들에 △중국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말고 직접 경험할 것 △우월감을 내려놓고 시장 참여자 입장으로 접근할 것 △중국 자본의 콘텐츠 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를 버릴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산업을 지켜보고 유연하게 대처할 것 등의 조언을 전하기도 했다.
특히 김 본부장은 콘텐츠 산업은 모든 연령, 모든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국 영화가 ‘유치하다’, ‘수준 낮다’고 얘기하는데, 우리가 가진 편견이나 선입견일 수 있다. 시장을 모르고 사업하는 것만큼 무모한 건 없다. 지금 시장에서 관객들이 원하는 지점이 무엇일까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왕총 화처미디어 부사장과의 1문1답
▶올해 초, ‘20세여 다시 한번’이 한중 합작영화 중 최고 성적을 냈다. 중국에서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크게 흥행한 사례가 많지 않은데, 일종의 모험 아니었나?=“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수상한 그녀’를 관계자들과 보고 다같이 감동 받았다. 중국에서도 같이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히 판타지 요소가 있는 로맨틱 코미디는 중국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서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20세여 다시 한번’ 공동투자는 물론, 최근 뉴와 합자법인을 출범한 것도 그렇고, 화처미디어가 최근 영화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있다면?=“드라마든 영화 제작이든,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드려는 목적은 같다고 본다. 지난 20년 간 드라마 제작으로 경험을 쌓아오면서,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중합작 프로젝트 파트너로 뉴(NEW)를 선택한 이유=“화처미디어와 가치관이 같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뉴가 우리를 선택한 이유와 같을 것이다. 큰 재단(기업)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직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고 생각한다.”
▶기존 합작영화와 달리,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 과정을 한국의 투자,배급사와 함께 한다. 어떤 효과를 기대하나=“무엇보다 한국 콘텐츠 제작자들이 중국보다 경험이 풍부하다 보니, 협업을 통해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입장에서도 중국 시장 공략에 ‘본토화’, ‘현지화’가 필요한데, 중국 제작사와 손 잡으면서 현지화에 성공한 경우들이 있다.”
▶협업 과정에서 단순 의사소통 외에도 작업 방식 등에서 충돌이 생길 수 있는데, 그 점에 대한 우려는 없었나?=“그 부분에 우려가 크긴 하다. 합작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에, 몇몇 한국 감독들이 중국 배우들과의 견해 차를 좁히지 못하고 다시 돌아간 경우가 있다.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이처럼 실패한 사례에서 교훈을 얻기도 한다. 뉴와도 약 10개월에 걸쳐 논의하며 의사소통 문제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결국 합작법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향후 예정된 작품이 강풀 원작의 ‘마녀’, 중국판 ‘뷰티 인사이드’ 등이다. 중국 시장에서도 통할 만한 한국 콘텐츠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나?=“한국 콘텐츠의 가치는 창의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더불어 제작 수준도 굉장히 높다. 분장부터 의상, 컴퓨터그래픽(CG)까지 굉장히 세밀하게 잘 만드는데, 중국에서 많이 배워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