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무고 혐의만 유죄…징역형의 집행유예
대법 “공무집행방해도 유죄…다시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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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경찰에 “배달원이 성추행을 하고 도망갔다”며 허위로 신고한 여성에게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스마트워치 지급 등 피해자 보호 업무를 방해한 게 맞다는 이유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권영준)는 무고, 위계공무집행방해죄 혐의를 받은 여성 A(25)씨에 대해 이같이 판시했다. 대법원은 A씨의 위계공무징행방해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인천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22년 11월께 모바일 채팅 앱을 통해 만난 남성을 자신의 아파트로 불렀다. 그는 남성에게 “배달원인 척 와서 나를 현관 밖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는 상황극을 하자”고 제안했다. 당초 남성은 이를 수락했다가 A씨가 현관 안에서도 성추행하는 상황을 연출하자, 의아하게 여겨 A씨의 집을 떠났다.
사건은 그 직후 발생했다. A씨는 경찰에 “배달이라고 해서 문을 열었더니 남성이 나를 성추행한 뒤 도망갔다”고 허위로 신고했다. A씨는 3회에 걸친 피해자 조사를 받으며 상황극 당시 촬영한 영상까지 제출했다. 다행히 남성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진 않았다. 둘 사이에 나눈 채팅 내역이 남아있었다.
수사기관은 남성 대신 A씨를 형사 재판에 넘겼다. 남성을 무고한 혐의, 위계(僞計속임수)에 의해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 등을 적용했다.
1심은 A씨의 무고 혐의만 유죄를 인정했다. 1심을 맡은 인천지법 형사17단독 이주영 판사는 지난해 12월,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동시에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공무집행방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보호를 받을 목적으로 허위의 신고를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신고가 허위인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범죄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이뤄질 수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2심에도 공무집행방해 혐의는 무죄가 선고됐다. 2심을 맡은 인천지법 1-3형사부(부장 이수민)는 지난 7월, 형량을 다소 올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동시에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2심 재판부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려면, 피의자가 적극적으로 허위의 증거를 조작해 제출하고, 그 결과 수사기관이 충실한 수사를 하더라도 증거가 허위임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며 A씨의 행동이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가 허위의 신고를 함으로써 경찰 인력이 투입돼 주변 수색, CCTV 영상 확인, 피해자 지원 업무 등을 했으나 이는 수사기관 본래의 직무 범위에 속하는 것일 뿐”이라며 “이것이 공무원의 적법한 직무에 관해 그릇된 행위를 한 것이라 볼 수 없고, A씨로 인해 치안공백이 야기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씨의 무고 혐의뿐 아니라 공무집행방해 혐의까지 유죄로 판단하는 게 맞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거짓 신고로 인해 범죄가 발생한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어 불필요한 대응조치를 하게 만들었다면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한다”며 “그 불법성이 현저히 높았는지 여부를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어 “A씨는 마치 성범죄 피해를 당한 것처럼 허위로 신고해 경찰관들이 현장에 즉각 출동하게 했다”며 “현장 주변을 수색·탐문하게 했으며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의 행위는 위계로써 경찰관의 사건 처리 업무, 범죄 예방 업무, 피해자 보호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원심(2심)은 이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며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으므로 깨고,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인천지법에 돌려보낸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A씨는 4번째 재판을 받게 됐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A씨는 무고뿐 아니라 공무집행방해 혐의까지 유죄를 선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형량도 다소 올라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