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마크롱, 유럽 주요정상 긴급회의 소집
美에 ‘아웃소싱’해온 안보대책 변화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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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유럽 주요국 외교장관 등이 지난 14~16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 회담을 갖고 있다. [AP] |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유럽연합(EU)이 미국과 러시아 때문에 근 80년 만에 군사력 부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을 완전히 배제한 채 우크라이나 전쟁 ‘즉시 종식’을 밀어부치고 있어 오는 17일 유럽 주요 정상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비공식 긴급 회동을 갖기로 했다며 약 80년간 미국에 안보 대책을 ‘아웃소싱’했던 유럽이 ‘군사력 부활’ 논의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통신은 트럼프 미 대통령의 복귀로 미국과 유럽의 외교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이 유럽 안보를 책임지지 않으면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이 명확하다고 덧붙였다.
마이클 맥콜 미 하원 외교위원장(공화, 텍사스)은 “우리 유럽 동맹국들은 이제 각자 자기 영역에서 등판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유럽에서는 이제 미국이 더 이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안보 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전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신은 이러한 발언은 14~16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의 기류를 반영한 것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유럽이 재빨리 우크라이나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가 매우 불리한 휴전협정에 서명하도록 내몰릴 수 있는 긴급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단 오는 23일로 예정된 독일 총선은 지나야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EU 주도국인 독일에서 총선 외 모든 이슈는 총선 후로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부활절(4월 20일)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하지만 서방 외교가에서는 이번주 시작되는 미러 당국자 회담 일정 등이 모호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올해 연말은 돼야 종전안이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서 지난 15일 키스 켈로그 미국 대통령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는 뮌헨안보회의에서 ‘미국이 마련한 종전 협상 테이블에 유럽도 참여하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해 유럽의 강한 반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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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6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탄 차가 지나가자 환호하고 있다. [AP] |
▶미 켈로그 특사 유럽 패싱에 유럽 주요국 즉각 반발=켈로그 특사는 “(종전 협상장이) 대규모 토론장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 주도로 진행될 것이며, 협상에서 유럽은 ‘패싱’(배제)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유럽 패싱 우려가 현실이 되자 유럽 정상들은 당혹감을 드러내고 즉시 대응에 들어갔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우크라이나와 EU가 참여하지 않는 협상은 신뢰할 수도, 성공적일 수도 없다”고 반발했다.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은 “유럽인을 빼놓은 채로 유럽 안보와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논의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유럽이 함께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럽 주요국 정상의 비공식 긴급회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소집했다.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 네덜란드, 덴마크 정상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이 이 회의에 초청됐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켈로그 미 특사와 17일로 예정된 회동을 다음날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의에서는 종전 협상에서 유럽을 배제한 트럼프 정부에 대한 대응,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파병안을 포함한 전후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방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당국자들을 인용, 이번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가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방안과 함께 향후 유럽이 미국과 무관하게 유럽 방위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 유럽 외교관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유럽은 협상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도 협상 결과에 대해서는 경찰 역할을 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라며 “이런 와중에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희소 광물에 50% 지분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미국은 유럽 동맹국들에 지난주 외교 문서를 보내 우크라이나 종전 합의의 일부로 유럽 각국이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장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수 있는지, 유럽 주도 평화유지군의 규모는 어떻게 될지 등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유럽 외교가에서는 유럽 각국이 이에 어떻게 응답할지 논쟁이 있지만, 유럽의 집단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 미국과 무관하게 유럽 방위 보장하는 방안 논의”=유럽이 미국 주도의 협상에서 목소리를 내려면 유럽이 실질적 대안을 내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거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뤼터 사무총장은 전날 뮌헨안보회의에서 유럽이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위한 ‘좋은 제안’을 내놔야 한다면서 “유럽이 발언권을 얻기를 바란다면 더 유의미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켈로그 특사 역시 전날 뮌헨안보회의에서 유럽을 향해 “협상 테이블 배석 여부를 불평할 게 아니라 구체적 제안과 아이디어를 마련하고 방위비를 증액해야 한다”고 거듭 압박했다.
영국 총리실은 키어 스타머 총리의 회의 참석을 확인하면서 스타머 총리가 이달 중 방미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할 때 이번 회의 결과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타머 총리는 이번 회의와 관련, “오늘날 우리의 국가 안보를 위해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는 한 세대에 한 번뿐인 순간”이라며 “유럽이 나토에서 더 큰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동맹의 분열로 우리 외부의 적에 맞서는 데 주의가 분산돼서는 안 된다”며 흔들리는 미국과 유럽의 관계를 다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뤼터 총장도 파리에서 열릴 정상 회의가 “우크라이나 협상 타결 시 유럽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명확해질 수 있도록 방위비 지출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유럽이 자체 군대를 창설할 때가 왔다고 촉구했다.
일단 미국이 유럽에 어느 정도의 방위비를 요구할지가 관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를 거론하며 미국은 앞으로 유럽의 안보를 위해 더 이상 돈을 쓰지 않을 것임을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잭 와틀링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선임 연구원은 이날 가디언 기고에서 “평화를 바란다면 평화를 유지할 군에 투자해야 한다”며 “유럽에는 돈이 있다. 영국을 비롯한 우크라이나의 유럽 우방국들이 그 돈을 쓸 의지가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스타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재무부가 난색을 보이는데도 국방비 증액 준비를 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가 보도했다.
한편,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마이크 왈츠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이번 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개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