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나 비극 다시 없길…서울시 프리랜서 권익보호지침 마련

서울시 비정형노동자 실태조사
75% “계약과 다른 업무 등 경험”
공정계약·인격권 등 6개 항목
분쟁상담자문단 문제 해결 지원도




프리랜서 수화통역사로 일하는 A씨. 시간당 급여를 받고 일하는 A 씨는 업무 중에 철저한 ‘을’이 된다. 출근을 했지만, 발주자(고용주)가 일단 ‘대기’를 요청하면 무작정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2시간을 일하기로 했는데, 방송 리허설을 해야 한다고 1시간 더 일찍 오라고 하더라”며 “만약 제가 거기서 리허설을 안하겠다고 하면 앞으로 나에게 일을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의 상황은 프리랜서가 겪는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 중 하나다. 프리랜서 등 소위 비정형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포함이 돼 있지 않아 보호사각지대에 있다. 이에 서울시는 이들이 보호 받을 수 있도록 ‘권익보호지침’을 마련해 배포한다.

18일 시에 따르면 권익보호지침은 ▷공정계약 ▷인격권 ▷안전보건 ▷사회보험(고용보험, 산재보험편), ▷저작권 ▷세무, 6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권리들이다. 이번 지침은 지난해 5~12월 프리랜서·플랫폼노동자·노무제공자 525명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마련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리랜서 75.2%는 ▷계약기준과 다른 추가 과업강요 ▷불명확한 업무범위 ▷보수 지연·미지급 ▷개인정보 침해 ▷폭언, 모욕 등 괴롭힘·갑질 ▷안전보건 문제 ▷저작권 침해 등을 경험했다. 또 산업, 노무제공형태, 수입수준 등과 무관하게 프리랜서·플랫폼노동자·노무제공자는 ▷계약 ▷보수 ▷인격권 ▷저작권 ▷안전권 ▷사회보험, 6개 영역에서 부당한 경험을 한 비중이 컸다.

시의 지침은 ‘공정계약: 정확한 주고받기, 계약에서 시작됩니다’ 항목으로 시작한다. 시는 이 항목에서 ‘업무 내용 및 범위’, ‘결과물의 기준’, ‘용역대금’ 등 프리랜서가 계약을 할 때 반드시 확인해야될 내용을 담았다. 앞서 언급한 A 씨의 사례도 업무 내용과 범위에 대한 대한 명확한 내용이 계약서에 담기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지침은 또 ‘발주처의 지나친 재량인정’, ‘결과물을 납품하는 경우 일체의 권리를 양도하거나 아무런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 등 계약서에 들어가는 독소조항도 안내했다.

최근 MBC 기상캐스터이자 프리랜서인 고(故) 오요안나 씨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프리랜서에 대한 직장내 갑질을 막기 위한 내용도 담았다. 현행 직장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근로자’에게만 적용되고 있는데, 이에 보호 대상을 근로자 뿐만 아니라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일하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호 지침 ‘인격권: 존중받고 존중하고, 일할 때의 기본 권리’에서는 폭언·갑질·성희롱으로부터 프리랜서를 보호하고,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보호하는 방법을 상세히 기술했다. ▷업무능력에 대해 근거없이 공개적으로 조롱·비난하는 행위 ▷비용을 부당하게 전가시키는 행위 ▷머리카락을 만지는 행위 등 ▷폭언·모욕 ▷갑질·부당강요 ▷성희롱의 구체적인 예시를 적시했다.

안전한 근로환경을 위한 지침도 포함됐다. 지침 중 ‘안전 보건: 모두의 일터는 안전하고 건강해야 합니다’ 항목에서는 산업별 유해·위험 요인 사례를 제시하고, 공연, 스포츠, 뉴미디어 IT, 뷰티미용 등 분야별로 업무시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도 포함됐다. 특히 산재보험법이 적용되지 않는 프리랜서가 안전사고 시 구제받을 수 있는 방안도 담겼다.

‘저작권: 놓치지 않을 거예요, 창작자 권리’를 통해서는 창작하는 저작권법 기본 내용과 저작권을 양도할 때 넘어가는 권리의 내용을 정리했다. 특히 저작권 ‘이용허락 계약’과 ‘양도 계약’의 모범 양식을 실어 프리랜서가 불이익을 받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외에도 ‘사회 보험: 다양해진 사회 보장 제도, 백 퍼센트 활용하기’에서는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제도에 가입하여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세무: 똑똑한 비용 처리로 내 지갑을 두둑하게’에서는 종합소득 신고 방법을 소개했다.

시는 또 프리랜서의 안정적 대금거래를 위해 ‘에스크로 결제 서비스’도 다음달부터 도입한다. 프리랜서-발주자 간 대금 거래가 에스크로 시스템에 연계되는 서비스다. 에스크로 결제 서비스는 프리랜서와 발주자 간의 계약 대금을 중립적인 제3자인 은행이 보관하고, 업무 완료 후 프리랜서에게 지급하는 거래 방식이다.

시는 또 프리랜서 분쟁상담자문단도 꾸려 에스크로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 해결을 지원한다. 분쟁상담자문단은 법률, 학계, 프리랜서 등 35명으로 구성된다. 분쟁상담자문단은 상담·자문과 합의안 작성 등의 지원을 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오는 12월부터는 서울형 에스크로를 기반으로 한 경력관리 서비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경력관리시스템은 프리랜서의 ▷계약관리 ▷예치금·지급 ▷분쟁관리 ▷경력확인 등의 통합 기능을 제공 하게 된다. 시 관계자는 “앞으로는 에스크로 이용 내용을 바탕으로 서울시가 프리랜서 경력확인서를 발급한다”며 “경력확인서를 통해 대출 등 시가 진행하는 사업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는 다음달 경력관리 시스템을 개발할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용역 발주를 할 예정이다. 박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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