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제품보다 30% 저가에 수입
日中과 철강 무역갈등 수면 위로
정부가 국내 철강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일본·중국산 열연제품에 대한 반덤핑(Anti-Dumping·AD) 조사에 나선다. ▶관련기사 4면
반덤핑이란 정상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수입되는 외국 물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규제 조치를 말한다. 조사가 시행되면 실제 일본 및 중국산 열연제품이 저가에 수입됐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조사 착수 자체가 상대국에서는 규제로 받아들여 무역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19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조사 착수 방침을 정하고 이를 대상 업체들에게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부 무역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조치와 관련 “(조사 개시 여부에 대해) 이달 말께 관보에 게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12월 19일 일본 및 중국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여부 조사해달라고 정부에 제소했고, 법에 따라 2개월 후인 이날까지 조사개시 여부를 업계에 통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부의 조사 착수 대상은 제소 당사자인 현대제철과 반덤핑 조사 대상으로 지목된 일본과 중국의 철강업체가 해당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현재 고로를 확보하고 열연 제품 생산이 가능한 업체는 사실상 포스코와 현대제철 단 두 곳에 불과한 상황에서, 현대제철이 총대를 메고 제소를 선택해 이뤄진 결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반덤핑 조사는 국내생산량이 동종 상품 전체생산량의 25% 이상인 경우에만 개시가 가능하다. 현대제철의 경우 열연강판 제품군의 국내 생산 점유율에서 기준을 충족하면서 이번 제소가 가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현대제철 측은 “중국·일본 등 해외 저가 수입산 철강재의 유입 증가로 국내 철강산업이 무너지기 직전”이라며 “경제블록화가 심화됨에 따라 한국도 이러한 변화에 대책이 필요하고, 무너진 철강시장의 정상화가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한국무역협회가 집계한 2021년부터 2025년 1월까지 열연강판(MTI 6132 제품 기준) 수입량은 1498만톤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일본산은 753만톤, 중국산은 649만톤으로 두 국가가 사실상 수입량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해도 일본산은 195만톤, 중국산은 164만톤의 열연강판이 수입된 것으로 집계된다.
가격 측면에서 봤을 때도 국내에서 유통되는 일본과 중국산 열연제품은 국산대비 가격이 약 30% 이상 저렴하다. 이에 고로작업 없이 열연제품을 가져와 제품을 가공하는 국내 중견 철강사들은 이에 일본과 중국산 제품을 선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부터 이어진 건설 불황으로 국내 철강산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이러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다만 이번 조치로 해당국 간 무역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으로 꼽힌다. 한·중·일 3국은 무역지형도가 다양한 분야에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 분야만 해도 국내 생산량 대비 내수 소비량이 50~60%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일본산 열연의 경우에는 일방적인 저가전략보다는 ‘엔저 효과’에 기반한 가격인하 폭이 컸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지점”이라고 밝혔다.
일본 철강업계는 최근 한국을 향해 “무역조치 대응을 검토 중”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있다. 이마이 다다시 일본철강연맹 회장은 현대제철 제소 이후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철강재 수입 증가는 일본 내의 공급망은 물론 철강업의 탈탄소화를 위한 투자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며 “시간을 들이지 않고 최대한 빨리 실효성 있는 대책을 진행하고 싶다”라는 입장을 냈다. 이번 조사로 일본철강업계 역시 한국에 대한 반덤핑 제소 명분이 생긴 셈이다. 다만 이번 조사가 직접적인 반덤핑 제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이번 조사결정을 앞두고 업계의 여러 의견을 청취하면서 조사개시 여부를 저울질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반덤핑 제소가 들어온 만큼 정부가 조사에 나설 것이란 것으로 업계에서는 이야기가 나왔다”면서 “정부가 업계와 진행한 여러 간담회 자리에서 중소·중견업계를 중심으로 많은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김성우·배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