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러시아 ‘밀월’, 지켜보는 중국 ‘착잡’

CNN “미러 갈등 완화 후엔 트럼프 중국 견제 집중 우려”

 

[AP/로이터 자료사진 합성]

[AP/로이터 자료사진 합성]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갑작스러운 외교 정책 변화가 중국의 전략적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돌발적인 평화 중재 움직임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의 신중하게 구축된 동맹 관계를 흔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 CNN은 최근 미러 양측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에 첫 단추를 끼운 것을 넘어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가운데, 중국이 미러 간 중재자 역할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협력해 중국이 가진 대(對) 러시아 경제적 영향력을 활용해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시사해 왔다. 중국 입장에서도 이는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피하기 위한 중요한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 러시아 간 평화 협상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1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과 관련해 지지 의사를 표했다. 왕 부장은 “중국은 평화회담을 위해 도움이 되는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이 중립적 중재자로서 역할을 확대할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제3세계 신흥 개발도상국)’의 목소리를 대변해 분쟁 해결을 주도하는 국가로 자리 잡고 싶어했다.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중국이 러시아 방위산업에 이중 용도로 사용 가능한 물자를 공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중국은 “정상적인 무역”이라고 반박해 왔다.

그러나 미러 양국이 관계 정상화 의지를 보인 상황에서 중국은 러시아의 동맹국으로서 협상에 깊이 관여하지도 못하고, 국제적 평화 중재자의 역할도 하지 못하는 입장에 놓였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예상치 못한 정책 변화가 중국 당국을 놀라게 했으며, 이에 중국이 이 상황에서 어떤 이점을 찾을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

시진핑과 푸틴은 수년간 ‘오랜 친구’로서 개인적 유대를 공고히 해왔으며,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강화해 왔다. 중국은 러시아를 미국, 유럽 등 서방과의 거대한 힘겨루기에서 강력한 핵심 파트너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3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시 주석은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했다. 양국의 동맹 관계로 인해 중국은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할 수 없었으며 푸틴의 국제적 고립을 피할 수 있도록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필수 물자를 공급하면서 경제적 생명줄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중국은 유럽의 신뢰를 잃었고 아시아 동맹국들까지 나토와 더욱 긴밀히 협력하는 계기가 됐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지정학적·경제적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고 밝히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회담에서 논의된 네 가지 핵심 주제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인 키스 켈로그는 뮌헨안보회의에서 전쟁 종식을 위해 러시아가 양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켈로그는 “푸틴 대통령이 군사력을 감축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미국은 그가 불편해할 만한 행동을 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CNN은 “만약 미국이 러시아와 가까워지면서 중러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전략을 추진한다면, 이는 관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미중 관계를 개선해 소련을 견제했던 ‘닉슨 독트린’의 정반대(reverse) 버전이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 관계를 완전히 깨트릴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반대하는 공통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중국에 깊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내부에서는 트럼프가 미러 관계를 이용해 중러 관계를 약화시킬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CNN은 “이러한 우려는 관거 중국과 러시아(구소련) 간의 불신의 역사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1969년 소련과 신생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은 국경 분쟁으로 인해 무력 충돌을 겪었으며, 이 문제는 1990년대가 돼서야 대부분 해결됐다.

1970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당시 미 국무장관은 공산주의 국가인 중·소 간의 갈등을 교묘하게 이용해,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미국의 전략적 우위를 확보했다. 이것이 바로‘ 닉슨 독트린’이다.

과거의 역사가 똑같이 반복될 가능성은 낮지만 동맹 관계에서 작은 균열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워싱턴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윤선 중국 전문가는 “‘리버스(reverse) 닉슨 전략’이 30% 정도만 성공해도 의심의 씨앗을 심기에 충분하다”며 “시진핑은 자신이 지난 12년 동안 공들여 구축한 중러간 전략적 동맹이 정말로 믿을 만한 것인지, 정말 그렇게 탄탄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중국이 더욱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 상하이 소재의 화동사범대학 러시아연구센터의 위빈 선임 연구원은 “중국이 정말 걱정하는 것은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느 정도 평화적 합의를 이루면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미러 간 갈등이 완화되면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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