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약 장기복용 장기손상과 무관

 14세기 유럽에서는 페스트가 창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페스트로 죽어갔고, 페스트는 공포의 대상이 됐다. 사람들은 마을광장에 모여 춤을 추면 페스트를 몰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름하여 ‘죽음의 무도’다. 또한 페스트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느낀 사람들은 화풀이를 할 대상을 찾아 괴롭혔다. 그래서 나라를 잃고 떠돌던 수많은 유태인들이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거짓 자백을 한 뒤 처형됐다.
 그러나 광란에 가까운 춤도, 수많은 유태인의 목숨도, 페스트의 창궐을 막지는 못했다. 결국 유럽에서만 2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잘못된 믿음은 비극을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고혈압은 가장 흔한 질환이기도 하면서 잘못 알려진 것이 너무나 많은 질환이기도 하다.
 그러한 잘못된 믿음은 환자를 해칠 수 있어 고혈압에 대한 오해를 짚어 보려고 한다.
 우선 뒷목이 뻣뻣한 증상이 생기면 흔히 고혈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혈압환자의 대부분은 증상이 없다. 아주 심하게 또는 갑자기 혈압이 올라간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혈압이 원인이 돼 뒷목이 뻣뻣한 증상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에게서 잘 나타나는 ‘긴장형 두통’에서 더 흔하다. 환자들은 별다른 증상이 없다보니 고혈압을 대수롭지 않은 질환으로 여기기 쉽지만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몸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질환이다.
 고혈압과 관련해 잘못 알려진 또 다른 하나는 치료에 관한 것이다. ‘고혈압 약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먹지 말아야 한다’는 속설이다. 고혈압은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수명이 10~20년 단축될 수 있다.
 또한 혈압이 올라갈수록 심혈관계의 부담이 커져서 심근경색, 심부전과 같은 질환이 잘 발생하며, 중풍과 같은 뇌혈관질환, 신부전과 같은 신장질환의 위험도 높아진다. 미국의 JNC 7차 보고서에 따르면 혈압이 수축기 20mmHg, 이완기 10mmHg가 올라가면 심혈관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두 배가 된다고 한다. ‘처음부터 약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수명을 단축시키고 중풍이나 심장병을 앓고 살라는 무서운 이야기인 셈이다.혈압약을 오래 먹으면 장기가 손상된다는 생각도 잘못된 생각이다. 높은 혈압은 장기 손상의 원인이 되며, 혈압을 떨어뜨리는 이유는 말초의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혈압은 정기적으로 자주 측정하고, 속설보다는 의사의 충고에 귀 기울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김준형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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