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이 1972년 이 노래를 발표하고 2~3년뒤 한국 대중가요를 대표하는 곡으로 떠오르자, 1975년 폴모리아가 내한공연때 이 곡을 연주했고, 편곡된 ‘돌아와요 부산항에(Come Back to Pusan Port)’는 폴모리아 음반으로 취입돼 전세계에 팔려나갔다.
일본에서는 강제징용자와 그 후손들은 물론 부산을 통한 교류가 많았던 일본인팬들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고, 미국 등지에서도 교민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다. ‘한류’의 원조를 두고 숱한 설(說)이 있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 또한 한국 대중가요의 세계화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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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훈기자/rosedale@heraldcorp.com ] |
가요계를 잠시 떠났다가 1979년 ‘위대한 탄생’ 결성과 함께 가요계로 복귀한 가왕은 ‘창밖의 여자’(1집)을 시작으로 ‘단발머리’, ‘고추잠자리’, ‘못찾겠다 꾀꼬리’ 등 명곡을 만드는데 영혼을 불사른다. 조용필의 노래중 ‘기도하는~꺄~’로 불리는 곡도 있다. 제목은 ‘비련’인데 조용필이 입만 떼면 소녀팬들이 비명에 가까운 함성을 지른데서 비롯됐다. 엄청난 인기를 말해준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명곡을 만들고 부르는데만 열중했던 그는 순진했다. 가왕이 데뷔한지 15년가량 지났을 때 어느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누구 노래냐”고 물었다가 “조용필, 당신것이잖아요”라는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다작이면서도 명품이 많을 정도로 음악열정이 강했음을 보여는 대목이다. 1980년대 지구레코드측과 음반계약을 할 때, ‘음반사에 지적재산권을 양도한다’는 조항이 갖는 의미를 따질 에너지 조차 음악혼을 불사르는데에만 투자했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이지만, ‘저작권 양도’ 조항은 조용필 음악세계의 확장, 한국대중가요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1980~1990년대 가왕의 얼굴이 새겨진 ‘베스트 앨범’이 유난히도 많았다. 기존에 발매된 앨범과 별다를 것 없는 곡들을 담고 있음에도 재탕되다보니 어리둥절해 하는 팬들이 많았고, 일각에서는 ‘짝퉁’이라는 오해도 싹텄다. 원저작권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채 레코드사 마음대로 음반에 채울 노래와 스펙을 정하다보니 벌어진 일이었다.
국내 최초 음반 밀리언셀러 ‘창밖의 여자’를 발표한지 10년이 지난뒤에야 문제의 조항이 끼친 해악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게된 조용필은 1990년 지구레코드와 계약을 종료하고 정규 12집을 낸다. 아티스트의 혼이 오롯이 투영된 첫 작품이다. 12집이지만 영어로는 1집을 의미하는 ‘볼륨 1(Vol. 1)’을 붙인다. 데뷔한지 22년만에 손수 만들어보는 가슴 뭉클한 앨범이었다.
20대,30대 자신의 육성을 빼앗겼기에, 1998년에 발매한 데뷔 30주년 기념 음반은 1~8집의 수록곡들을 모조리 재녹음해야 했다.
젊은 날 육성이 담긴 곡들에 대한 소송을 벌였지만, 법정은 30대 가왕의 순수함을 포용하지 못했다. 1997년 음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2004년 대법원은 조용필 패소판결을 내린다.
‘착한 가왕’은 그렇게 또 10년가량 체념했지만, 이 억울함을 소셜네트워크(SNS)는 용납하지 않았다. 락 분야 후배인 시나위의 신대철은 지난해 5월 자신의 SNS에 저작권 양도 조항 때문에 겪어야 했던 가왕의 ‘잃어버린 세월’을 절절하게 표현했고, 분노한 네티즌과 엄지족들이 조용필 저작권 반환 ‘혁명’을 일으켜 결국 가왕과 함께 승리를 거두면서 SNS의 엄청난 파워를 보여준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조용필의 히트곡 31곡의 저작권을 가진 음반사 지구레코드 측이 최근 조용필에게 히트곡에 대한 배포권과 복제권을 이전한다는 내용의 공증서류를 접수했다고 12일 밝혔다.
지금 가왕은 데뷔한지 46년만의 승리를 거뒀지만 담담한 모습이라고 한다. 그는 “도움 주신 국민과 동료 음악인의 성원에 감사드린다”는 짤막한 소회를 측근을 통해 밝혀왔다.
승리에 도취될 수 없는 그의 모습은 후배 뮤지션과 음반계에 또다른 과제를 던진다. 조용필이 일찍이 완성을 보지 못한 K팝의 세계화가 이제 이뤄졌으니, 국민과 세계인을 즐겁게 하는 음악 저작권자에 대한 보호와 보상이 제대로 이뤄질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에 비해서는 36분의1, 영국에 비해서는 17분의1 수준인 한국의 음원 단가는 40년전 멍에와 낙인이 지워지지 않았음을 뜻한다. 세계적인 K팝 공장 한국 대중가요계엔 아직 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점을 ‘조용필 케이스’는 시위하고 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