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를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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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천문화예술원 김성민 원장이 수묵화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번 제시카와 함께 K타운을 찾았을 때다.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던 병풍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제시카를 보고 동양화를 좋아하냐고 물었었다.

“동양화는 잘 모르지만 화투에서 봤다. 화투에 동양화가 많이 그려져 있던데…비,풍,초… 맞나?”

이럴 수가. 제시카 입에서 ‘비풍초육구팔’이 나올 줄이야. 한참을 웃다가 다음엔 한국의 그림을 배워보자 했다.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좋아하는 제시카. 그러고 보니 동양문화와 한국학은 제시카의 전공과목이 아닌가.

부에나 팍에 있는 ‘효천문화예술원’.

미주지역의 동양화 전도사로 널리 알려진 동양화가 김성민씨 원장이 그림을 가르치는 곳이다.

벽에는 산수화, 화조화, 사군자 등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마치 한국 산수의 절경 속에 빠져있는 듯 하다. 제시카의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김성민: 매, 난, 국, 죽 사군자를 시작으로 연, 모란, 목련, 파초, 포도, 소나무를 더해 십군자를 배우면 한국화의 기본은 아는 거다.

제시카: 와 이 정도로 그리려면 얼마나 그려야 하나?

김성민: 나는 선생님께 사군자만 3년을 배웠다. 엄한 스승님 밑에서 무릎 꿇고 배우던 때 이야기고 보통 1년 정도면 훌륭한 한국화를 그릴 수 있다.

제시카: 동양화는 모두 비슷비슷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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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네~!” 제시카가 한국화의 호랑이 그림을 만져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김성민: 중국화는 산이나 꽃 등을 크게 강조하고 일본화는 안개나 꽃 등으로 예쁘게 그린다. 반면 한국화는 검소하면서도 투박스러운 면이 있으면서 해학적이기도 하다. 한국화는 산수화, 화조화, 채색화, 인물화, 불화까지 매우 다양하며 기교면에서 단연 최고다. 보통 동양화하면 중국화를 칭하기 때문에 나는 코리안페인팅(한국화)라고 부르길 고집한다.

제시카 앞으로 문방사우, 먹과 벼루 붓과 종이를 펼쳐놓는 김성민 원장.

옛 선비들이 늘 함께 하는 네 친구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설명하자 제시카는 또 한번 감탄한다.

“사군자(四君子)와 문방사우(文房四友)는 너무나 멋진 표현이다. 식물이나 사물에 대한 깊은 철학이 엿보인다. 세상에 어떤 시인이 이처럼 멋진 표현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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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이 이런 거구나~” 제시카에게 한국의 문화와 예술은 말할 수 없는 신비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제시카가 벼루에 먹을 갈기 시작하자 특유의 향이 은은히 퍼진다.

▶제시카: 검은색 물감을 쓰면 안되나?

▶김성민: 먹물의 표현을 따라오질 못한다. 향을 맡아보라. 냄새가 좋으면 제시카는 진짜 동양의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다.

▶제시카: 먹은 어떻게 만드나?

▶김성민: 나무를 태운 뒤 그을음을 긁어 내어서 아교와 섞은 것이다.

▶제시카: 그림을 그리는 종이가 특이하다?

▶김성민: 화선지는 세상의 어느 화지보다 부드럽고 예민해 붓에 묻은 수묵의 양과 화공의 감정에 따라 스미고 번지는 맛이 다르다. 먹과 붓의 매력을 화선지나 한지 말고는 표현할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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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원장의 도움으로 제시카가 난을 치고 있다.

오늘 제시카는 사군자 중 ‘난’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스승의 시범에 따라 조심조심 난을 치는 모습이 규방의 아씨같이 곱다.

김성민 원장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시 한 수를 옮겨 적는다.

紺碧垂香(감벽수향)

淡月香風(담월향풍)

벼랑 끝 드리운 푸른 난초의 향기는

맑은 달빛 아래 향기로운 바람이 된다.

어느새 제시카 주위로 모여든 아줌마 학생들이 한마디씩 건네자 웃음이 넘친다.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

“400살 먹은 외계인 도민준도 반하겠네”

이번 한국화 체험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는 제시카.

남편과 함께 할 취미를 찾던 중이었다며 이보다 좋은 것이 없을 듯 하다며 무릎을 친다.

“남편과 함께 부지런히 배워보겠다. 음~~ 수묵의 은은한 향이 잊혀지지 않는다”

하혜연 기자

●효천문화예술원 김성민 원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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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동양화의 6대 대가로 불리는 의제 허백련 선생에게 전수받은 김성민 원장은 한국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국선과 호남예술제, 동아미술대전 등에서 입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 뉴욕에서 활동했으며 뉴욕시 퀸즈보로 문화예술상(94), 뉴욕시 타운홀 문화예술상(97년)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뉴욕 파타키 주지사가 주관한 제 1회 미주한인 미술대전(97년) 운영위원장과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남가주로 건너 온 김성민 원장은 LA에 자신의 호를 딴 ‘효천 문화 예술원’을 설립하고 작품 활동와 제자양성에 매진해 오고 있다. ▲문의:213-550-8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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