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슬픔 이겨나가는 영화들
아픈 기억을 드러내고 공유하는 것
치유는 서로를 보듬어가는 과정
일상이 버겁고 죄스러운 하루하루가 계속되는 시간이다. 달아나 보려고 해도 돌아보면 제자리다. 배의 마지막 남은 자락을 집어삼키던 차갑고 시꺼먼 바다가, 진도에서 펼쳐졌던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안타까운 죽음과 통곡의 풍경이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밤이면 악몽이 찾아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려간다. 울다가 깨면 꿈이지만, 누군가에겐 현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애써 참았던 눈물이 또 흐른다. 살아서 아프고, 아무것도 해 줄게 없어 미안하다.
모든 국민이 울었다. 죽음 속에서 살아나고,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을 바다 속으로 떠나보낸 이들만이야 할까만, 세월호 침몰의 비극을 마주하며 모든 국민이 함께 울고, 함께 아파했다.
이제 조심스럽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멈춰버린 시계바늘을 다시 밀어야 할 시간이다. 치유는 모든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 됐다. 그 일에 아주 작으나마 보탬이 될만한 작품들이 있을까.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과 이를 원작으로 한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동명 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눈물이 나고 슬플 때마다 “장화가 무거워졌다”고 말하는 9살 소년 ‘오스카’의 이야기다.
오스카의 아빠는 9.11 테러 당시 쌍둥이 빌딩의 고층 사무실에 있었다. 누구보다도 자상한 아빠였고 다정한 남편이었던 그는 9ㆍ11 테러로 목숨을 잃었고,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누구보다 똑똑하지만 또래 아이들과 조금은 다른 오스카는 사고 당일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전화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사고 직전의 아빠의 목소리를 듣는다. “오스카, 거기 있니? 오스카, 거기 있니?”라고 다급하게 찾는 아빠의 목소리. 이윽고 울린 전화벨은 오스카에게 생전 아빠와 통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무엇인가 두려워진 오스카는 끝내 수화기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1년후. 그동안 오스카는 아빠와 마지막 통화를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더욱 심해진 공포증 속에서 살았다. 그러던 중 실수로 아빠의 유품인 꽃병을 깨트리고 그 속에서 ‘블랙(Black)’이라는 단어가 적힌 작은 봉투와 열쇠를 찾는다. 한가지 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병적인 버릇이 있는 아들을 위해 곧잘 탐험 과제를 내주며 함께 놀았던 아빠. 오스카는 아빠가 열쇠와 쪽지를 통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는 생각에, ‘블랙’이라는 이름의 뉴욕시민 수백명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오스카는 다양한 이들의 삶과 사랑, 상처와 아픔을 마주한다. 그리고 “차라리 아빠 대신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오스카는 새로운 진실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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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자르 선생님’은 비극을 공동으로 목격한 아이들과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교사를 통해 상처와 슬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
한 소년이 자신 속에 숨겨뒀던 분노와 슬픔, 죄책감, 상실감을 마주보기까지의 과정이 소설과 영화에 아름다운 문체와 영상으로 담겼다.
캐나다영화 ‘라자르 선생님’(감독 필리프 팔라도)은 비극적인 죽음을 집단적으로 목격한 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초등학교 교실이 배경이다.
여느날과 같은 어느 아침이었다. 우유 배급 당번을 맡은 소년 ‘시몽’은 등교하자마자 친구들에게 나눠 줄 우유를 챙겨들고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담임선생님이 교실에서 자살한 것이다. 아이들은 충격에 빠지고 학교에선 상담사에 의뢰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한다. 라자르 선생님은 공석이 돼 버린 담임교사 자리의 후임으로 찾아온 알제리출신의 이민자다. 그 또한 마음 깊숙히 상실감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고국에서의 폭동으로 아내와 두 자식을 잃고 혼자만 살아남은 처지였다. 학교에서는 정해진 심리치료 외에는 모두가 보고 아는 죽음을 금기와 침묵에 부친다. 하지만 라자르는 감히 다시 꺼내고 말하기 두려워 감춰두었던 기억들을 드러내고, 함께 나누는 것으로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공유하는 것. 라자르와 아이들이 서로를 보듬어가는 과정이다.
아론 애크하트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래빗홀’(감독 존 캐머런 밋첼)은 세상의 가장 큰 슬픔, 가족의 상실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부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남편은 아들의 흔적을 간직함으로써 상실의 슬픔을 달래려 하고, 부인은 죽은 아이의 자취를 온전히 없앰으로써 시련을 이겨내려 한다. 그리고 이들은 고통과 치유의 막다른 길끝에서 사고의 가해자 소년과 만난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사랑한다, 용서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라자르 선생님’ ‘래빗홀’은 침묵과 망각이 아니라 기억과 공유, 대화가 치유의 시작임을 말한다. 이제 우리가 나누어야 할 대화의 형식과 우리가 나누어야 할 이야기의 내용에 관해 생각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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