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 “‘완벽한 등근육, 세밀하다’라는 지문 한줄로부터”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영화 ‘역린’은 현빈의 몸으로부터 아름답고 고독했으며 강인했던 군왕의 초상을 그려간다. 정조가 등장하는 첫 장면은 이슥한 밤, 서재인 존현각에서 상의를 벗고 팔굽혀 펴기를 하는 모습이다. 영화로 구현된 상상은 궁 내에서도 온통 정적들에 둘러싸여 있던 정조가 오로지 스스로의 의지와 학식, 그리고 육신만을 믿어야 했던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아마도 스스로 몸을 단련하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는 암살의 위협을 제쳐 내지 못하리라는 불안과 고독, 그리고 생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드라마의 바깥으로 나오면, 조각처럼 다듬어진 현빈의 몸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초반의 장면은 현빈의 팬들을 위한 서비스다. 이 장면을 두고, 현빈은 ‘팔굽혀 펴기 하는 정조, 완벽한 등근육이 세밀하게 움직인다’라고 씌어진 시나리오속 지문으로부터 만들어갔다고 털어놓았다. ‘역린’이 지난 4월 30일 개봉해 줄곧 흥행 1위를 달리며 10일까지 321만명을 돌파했고, 현빈이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개봉 전 예정됐지만 세월호 참사로 미뤄뒀던 자리였다. 


“왕의 모습 보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왕이지만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내 사람을 지키려고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가려고 노력했던 인간의 모습, 정조 보다는 인간 이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등근육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시나리오 받았을 때 저도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있어서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역사 속 왕들의 모습을 영정이나 서적으로 봤을 때 ‘등근육’에 대한 묘사나 이야기는 없었거든요. 하하. 제가 아는 한 왕은 햇볕도 받지 않고 좋은 음식만 먹어서 살집도 좀 있지 않을까 했죠. 그래서 관객들도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이재규)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습니다. 시나리오에 ‘팔굽혀펴기 하는 정조, 완벽한 등근육이 세밀하다’는 지문 한 줄로 상상을 했습니다. 정조가 존현각에 있을 때 어떻게 살고 지냈을까.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은 어땠을까. 정조는 원래 문무에 능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고 했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처절하고 철저하게 살았다는 의미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의지가 등근육으로 표현될 수도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

현빈은 ‘왕위에 오른지 1년 남짓된 스물 여섯살의 젊은 왕’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연기와 목소리의 톤을 만들어갔다.

“정조의 스물 여섯살 때 있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존의 왕에 대한 이미지, 근엄하고 중후한 이미지보다는 지금 막 왕의 자리에 오른 젊은 왕과 그가 처해 있는 상황에 맞게 톤을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영화 속 대사가 최근의 시국과 맞물려 관객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바로 정조가 거듭 인용하는 중용 23장의 글귀로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 나오고 겉에 배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는 내용이다.

“영화 촬영을 하고 이 말이 깊이 남았습니다. 무대 인사할 때도 하루에 스물 몇 회씩 강행군을 하고는 했는데 지칠때도 있었죠. 그 때마다 문득 중용 23장을 생각하면 파이팅을 하게 됐어요. 힘이 생겼죠. 무대 인사에서도 관객들이 이 말을 오랫동간 기억하셨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리고는 했습니다. ”

현빈은 이 말을 빌어 관객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는 이유를 짐작했다.

“영화 속 정조는 우리가 바라는 군주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시국이 이렇다 보니 중용을 인용한 대사가 관객들에게 남다르게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중용의 문구는 언제 어느 상황이든 맞는 말이지만, 지금은 더욱 각별한 때이고, 그래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대사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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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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