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정경호 “동년배 배우 중 연기 제일 잘한 말 듣고 싶어요”

배우 정경호가 이번에는 사연 많은 연쇄살인마로 나섰다. 현재 SBS 주말드라마 ‘끝없는 사랑’에서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한광철 역을 맡고 있기에 상반된 그의 연기가 흥미롭다.

‘맨홀’은 서울의 한 동네에서 6개월 간 10여 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민들의 불안감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사건의 단서가 맨홀에서 최초로 발견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정경호, 정유미, 김새론, 조달환, 최덕문 등이 출연한다.

제대 후 ‘무정도시’, ‘롤러코스터’, ‘끝없는 사랑’, ‘맨홀’까지 어느 하나 겹치는 캐릭터가 없다. 스스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고민하는 정경호. 최근 그와 만나 ‘맨홀’에 촬영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가 매일 걸어다니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맨홀 속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흔치 않은 소재인 ‘맨홀’. 이 영화의 어떤 점이 정경호를 ‘맨홀’ 속의 수철로 살게했을까.

“오로지 신재영 감독님만 보고 이 작품을 선택했어요. 그 동안 신재영 감독님 연출한 작품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 사림인가 궁금했거든요. 정말 영화를 위해 태어난 분이고, 영화 밖에 모르시는 분이세요.”

“또 다른 이유를 꼽자면 군대 다녀와서 안해봤던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형범하지 않은 인물들을 해보고 싶었죠. 그런 면에서 수철은 주변에 당연히 없어야 하는 인물이고, 쉽게 볼 수도 없는 캐릭터기 때문에 새롭게 만들고, 표현하는 것들이 재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극중 수철은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다. 한 번도 정경호는 그 동안 한 번도 악한 캐릭터를 선보인 적이 없다. 수철의 어느 부분을 염두해 담았을까.

“없는 인물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수철이 왜 살인을 하는지’, ‘왜 맨홀에 갇혀 사는지’, ‘납치를 하고 자신만의 가족 사진을 왜 만드는지’ 등을 많이 생각했죠. 또 그 인물이 살아온 역사를 보여주느냐, 순수한 악의 존재 살인마로 보여주느냐의 문제가 가장 컸어요. 사실 저에 대한 과거가 길었는데 그것보다는 두 자매와 한 아이 아빠, 그리고 저의 맨홀 속에서의 혈투에 중심을 뒀죠.”

영화 속에서 수철은 대사가 많이 없다. 살인을 저지르기 전 분노하면서도 나른한 표정, 자신만의 가족 사진을 만드는 표정, 자신의 계획을 방해한 이들 때문에 감정을 폭발 시키는 표정 등 섬세한 감정이 담아야했다. 표정과 행동만으로 관객들에게 수철의 감정을 전달해야하기 때문. 많이 힘들지는 않았을까.

“지금까지 대사가 가장 없던 것이 ‘무정도시’였어요. 그런데 이 영화도 초반 시나리오에 수철 대사가 아무것도 없는거예요. 눈빛 지문만 있었어요. 그게 가장 어렵더라고요. 다행히 제 표정 말고도 카메라 앵글 등 다른 시각적인 것들이 연출로서 보완을 해주신 것 같아요.”

극중 정경호는 살인을 저지르며 잔인한 행동을 일삼는다. 맞는 연기보다 때리는 연기가 더 힘들다고 토로하는 배우들도 많다. 정경호 역시 때리는 신 때문에 많이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극중 욕조에서 여자를 때리는 신이 있는데 연기하면서 처음으로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짧게 편집됐지만 꽤 길게 촬영했거든요. 때리는 것을 해보니까 못하겠더라고요. ‘연기하면서 기분이 안좋을 수도 있구나’를 처음으로 느꼈어요.”

함께 출연한 김새론은 현재 같은 소속사 배우고, 정유미도 한 때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이자 친구라 한결 소통하고 호흡하기 편했다. 정경호는 작업하면서 느꼈던 두 배우가 가지고 있는 연기에 대한 열정을 칭찬했다.

“(정)유미는 10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예요. 같은 사무실 식구기도 했고요. 그래서 너무 편했어요. 모든 작품 시작할 때 다른 배우들과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한데 유미와 저는 그 시간들이 필요 없었죠. 영화 이야기만 편하게 할 수 있어서 부담이 없었죠. 제가 생각하기에 유미는 저와 제일 말이 잘 통하는 여배우기도 해요. 좋아하는 음악, 작품, 여행지가 비슷하거든요. 오랜시간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이야기가 잘 통해서일 거예요. 그 친구는 정해지지 않은 날 것의 연기를 추구하는 스타일인데 자기 마음에 진심이 전달되지 않으면 표현을 잘 못해요.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해요. 스스로 공감이 안되면 막더라고요.”

“새론이 영화는 다 봤어요. 어린데 그런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요. 제가 저 나이대는 무슨 생각을 가졌을지를 떠올리면 부럽기도 하고요. 청소년 관람불가라 보지도 못하는 영화를 중학생 나이에 표현하다니 놀라울 뿐이죠. 지금까지 해온 것을 보면 분명 좋은 배우로 성장할 것 같아요.”

아무리 허상 속의 인물을 연기한다고 하지만, 그 캐릭터에 대한 사연과 감정들을 배우가 가슴으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어려움에 부딪친다. 드라마 같이 실시간으로 촬영해 방송해야하는 지금의 현장에서 이는 배우가 감당해내야 할 몫이다. 하지만 정경호는 그런 환경을 탓하기 보다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오히려 제 안에 소화해낸다.

“캐릭터가 잘 와닿지 않을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연기해요. 시간에 압박이 많은 드라마 촬영 때 그런 경우가 종종 있어요. 아직 다 이해 못했는데 빨리 찍어야하잖아요. 그런데 또 이 점이 드라마에서 배울점인 것 같아요. 순발력 있게 내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능력이 생기니까요. 이런 것들이 갖춰져야 드라마에서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재영 감독님만을 믿고 ‘맨홀’ 출연을 흔쾌히 결정했다는 정경호. 실제로 현장에서 신재영 감독은 정경호 눈에 어떤사람으로 비쳤을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신재영 감독님은 며릿 속에 영화 밖에 없는 분이세요. 따로 소속돼있는 영화팀이 있는데도 편의점 아르바이트해서 단편이라도 찍을까라고 고민하는 사람이예요. 엄청나게 영화를 사랑한다는 사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맨홀’이라는 소재 안에서 긴박감 있는 영화가 있길 바랬어요.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조금은 그런 부분이 포현된 것 같아요.”

정경호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배우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결심을 굳혔고, 그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앞으로 정경호가 어떤 연기로 세상 밖으로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제대 후에 ‘롤러코스터’, ‘무정도시’ 찍고 ‘맨홀’까지 찍으니까 저랑 다른 역할을 만들어버리는 게 재밌어요. 흔히들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라고 말하는데 전 아니었어요. 99%의 설정, 계산, 노력들로 캐릭터가 만들어지거든요. 앞으로 어떤 역을 맡든지 ‘정경호스럽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아직 정경호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이 없는 게 아쉽긴한데 장점으로도 작용되는 것 같아요. 물론 아쉬움은 크죠. 작품이 잘되면 내가 다음 작품 할 때 선택권이 넓어지는건 분명하니깐요. 조금 더 나은 작품으로 하나씩 하나씩 해내간다면 언젠가는 많이 봐주고 공감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해서 동년배 중 제일 연기 잘하는 연기자가 제 목표입니다. 관심 가지고 기대해주세요.”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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