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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시를 비롯한 일식의 대중화를 주도한 가부키는 LA 일원에 9호점까지 확장한 대형 레스토랑 기업으로 성정했다. 창업자인 데이빗 리 사장이 버뱅크 헤드쿼터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류종상기자
ⓒ2006 Koreaherald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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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레스토랑 가부키는 지난 5년 사이에만 브랜치 8곳을 잇따라 개설했다. 가부키의 한국인 오너겸 CEO인 데이빗 리 사장은 요즘 내년에 오픈할 발렌시아 10호점 준비에 여념이 없다. 10여년전만해도 패사디나 한 곳에서 연간 200만달러 정도의 매출실적을 올리던 로컬 레스토랑이 지금은 9개점포에서 6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연간 외형 3천만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기업화했다. 가부키는 어느덧 캘리포니안들 사이에선 일본의 남장 연극이라기 보다 스시로 대표되는 일본음식을 스스럼없이 접하게 해준 레스토랑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 폐업 위기에서 혁신적인 컨셉 변경
1991년 패사디나에 가부키가 처음 생겼을 때만해도 요즘같은 컨셉의 식당은 아니었다. 종업원들의 유니폼부터 기모노차림이었을 정도로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일본식 분위기였다.스시맨들 또한 나이 지긋한 일본의 노인들이었다. 가부키의 초기 컨셉은 정통 일본음식이었던 셈이다. 당시 미국사회에서는 스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스시 레스토랑은 매우 값비싼 곳으로 인식돼 있기도 했다. 한마디로 대중적이지 못했다.
가부키를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LA 폭동이 일어났다. 가뜩이나 비싼 식당이라는 이미지에 흉흉해진 사회 분위기까지 겹쳐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섣불리 뛰어들었다는 자책과 후회로 이 사장은 가부키의 문을 닫을 뻔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 동료 미국인들이 주말에 어디서 외식했는가를 화제 삼으면서 행여 스시집에 다녀왔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비싼 데를 갔느냐는 식으로 놀라던 일이 생각나더군요. 가부키를 열고 힘들었을 때 어느 한 순간 그 상황이 생각나 포기하려던 저를 붙들었지요.”
스시가 왜 비싸야할까부터 점검했다. 서울 종로에서 20년 동안 일식집을 운영한 가계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일식을 좋아했던 그로서는 맛 좋고 건강에 좋은 일식을 보다 많은 사람이 즐기려면 일단 누구나 부담없이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을 찾았다.
가부키 1호점을 꾸몄던 전통적인 일본 분위기를 싹 걷어냈다. 종업원들에게 입혔던 기모노를 현대식 감각의 밝고 발랄한 디자인으로 바꿨고, 늙은 스시맨들도 젊은 사람들로 교체했다. 심지어 식탁보조차 없애버렸다. 그동안의 모든 것들이 군더더기라고 여겨졌다.그런 다음 스시와 롤을 손님들의 요구사항과 취향에 맞추는 커스토마이즈를 단행했다. 차림표에 죽 나와 있는 스시와 롤 종류를 손님이 직접 골라 주문하는 방식을 처음 시작한 곳이 가부키였다. 이 사장은 창업 직후 폐업 위기를 맞는 불안한 상황에서 과감하게 컨셉을 변경하는 결단으로 오늘에 이르는 바탕을 마련했다. 요즘 유행하는 혁신경영의 기법을 스몰비즈니스에서 착수했던 셈이다.
■ 고객은 업주의 노력을 안다
“당시만해도 한인타운의 은행들이 대출을 해주는 업종이라고 해봐야 세탁소와 리커스토어, 마켓 정도 였지요. 하지만 옷 세탁을 잘 한다고 먼길을 일부러 찾아가는 세탁소는 없겠지요. 식당은 맛 있으면 1시간 이상 차를 달려서라도 찾아가는 비즈니스라는 점에 착안해서 매달렸던 겁니다.”
젊은 분위기에 가격이 싼 스시전문 레스토랑으로 바뀌면서 가부키의 명성은 패사디나 일원에서 서서히 퍼져갔다.연인끼리, 가족끼리, 비즈니스맨들끼리 찾는 발길이 줄을 이었다.
단지 대중화했다는 이유만으로 가부키가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새벽시장에서 좋은 생선을 고르는 노력 따위야 기본이고, 무엇보다 4~5개월씩 걸리는 새로운 메뉴개발에 온 정성을 쏟았던 점을 주목할 만하다.
30년 경력의 일본인 수석요리사와 함께 일본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메뉴를 벤치마킹, 매년 대여섯 가지씩 새로운 먹거리를 추가한 과정을 이 사장은”자동차회사가 신차를 출시하는 노력과 다름없다”고 못박는다.
“한가지 메뉴로 10년을 울궈먹는 식당이 돼서는 안된다고 믿었지요. 누구보다 손님들이 알거든요. 이 식당이 얼마나 노력하는지요…”
■ 품질 ·서비스 ·청결은 사명
지금은 9개의 브랜치가 있는 가부키가 첫번째 점포를 열고 2호점을 오픈하기까지 9년이 걸렸다. 지난 2000년에야 우드랜드힐스에 2호점을 열었을 때 이 사장의 주변 사람들은 사업을 너무 소극적으로 하는 게 아니냐고 의아해 했다.
“사업을 확장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습니까. 노하우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자본이 축적돼야 했으니까요.”
하마터면 문을 닫을 뻔했던 폭동 당시 남의 돈을 끌어다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체감한 이 사장은 스스로의 역량이 쌓이기 전까지는 무리하지 않으려 했을 뿐이라고 했다. 2호점을 열면서 가부키의 확장은 탄력을 받는다. 2002년 웨스트LA지역의 하워드휴즈센터에 3호점을, 2003년에는 세리토스에 4호점을 냈고, 2004년 한해에는 할리우드와 버뱅크, 올드패사디나와 랜초 쿠카몽가 등에 잇따라 브랜치를 개설했다. 그리고 지난해 헌팅톤 비치에 9호점을 열었다. 내년 가을쯤에는 발렌시아지역에 브랜치 확장의 이정표가 될만한 10호점이 문을 연다. 아울러 라스베가스와 아리조나주 스캇데일 등 캘리포니아를 벗어난 지역에도 지점을 계획 중이다.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을 비롯, 한국내에도 2~3개의 가부키 지점을 생각할 만큼 가부키는 확장일로에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 사장은 가부키의 프랜차이즈화는 맘에 두지 않고 있다. 현재의 9개 점포도 모두 직영체제이다. 이유는 간단하다.프랜차이즈로 가면 충분한 서비스가 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퀄리티관리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특징적인 품질(Featureing Quality)과 친화적인 서비스(Friendly Service),그리고 흠잡을 데 없는 위생 청결(Impeccable Sanitation)로 요약되는 가부키의 모토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이 사장의 표현에 따르면 미션(Mission)이다. 그같은 사명의식을 고수하기 위해서라면 프랜차이즈보다는 직영체제를 고집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 데이빗 리 사장은
연세대 기계공학과(75학번)를 졸업한 뒤 1982년 미국으로 건너와 LA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에서 엔지니어링 석사학위를 취득했다.’리비 글래스’라는 회사에서 4년간 직장생활을 할 때까지만 해도 레스토랑 사업과 전혀 무관했지만 어린 시절 서울 종로 4가에서 일식집을 운영한 부친의 영향으로 일식 레스토랑에 대한 관심을 되살려 칼폴리 포모나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다시 공부, 1989년 MBA를 땄다.2년 뒤 패사디나에 가부키 1호점을 오픈, 당시만해도 값비싼 고급메뉴로 인식됐던 스시를 비롯한 일식을 대중화하는 데 성공,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황덕준 / 미주판 대표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