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애의 스크린에서 삶을 묻다] 섭식장애 두 여인 연민·우정·애정 / 301 302

’301·302′는 한국영화로서는 보기 드문 여성영화였습니다.

박철수 감독의 ‘안개기둥’이란 영화 기억한다면 한국 영화감독으로서 흔치 않게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묘사를 그려내는 박감독의 세계관이 다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너무 마초같은 남성들만 주위에 가득하니 영화판에서 남성감독이 그려내는 여성성은 그 진정성을 차치하고라도 신선하기만 한거죠. 이 영화 역시 남성에 의해 소외된 여성들이 이야기입니다.

▶작품 년도  1995년

▶감독   박철수

▶주연 황신혜·방은진·김추련 

원룸 301호와 302호에는 서로 다른 섭식장애를 가진 두 여자가 살고 있습니다.  301호의 송희(방은진 분)는 소위 말하는 음식만 밝히는 뚱뚱한 이혼녀죠. 못생긴 건 용서해도 뚱뚱한 건 용서할 수 없다는 요즘 세상에서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뚱뚱하냔 말이죠.

하지만 그녀에게는 맛깔스럽게 요리는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온갖 종류의 맛있는 음식을 해주며 애정을 쏟지만 남편은 이런 아내의 수동적이고 맹목적인 헌신을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부부 사이에 부담의 끝은 바로 외도로 이어집니다. 송희는 결국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남편이 사랑하는 애완견으로 맛있는 스프를 끓여낸 후 남편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 버립니다.

옆집 302호는 301호 송희와는 반대로 말라깽이 이혼녀 윤희(황신혜 분)입니다. 그녀는 물을 제외한 모든 음식을 먹기만 하면 곧장 변기로 가서 토해야하는 섭식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단지 다이어트 때문일까요?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모르는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사춘기 시절 그녀는 의붓 아버지로부터 습관적으로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폭력적인 남편과 가난 앞에서 어린 딸을 보호하지 못하고 눈감아버린 것입니다.

윤희는 어린 시절 의붓 아버지가 엄청난 식욕 후에 다시 자신을 탐했던 성욕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음식을 먹는 것은 성행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이제 그녀는 성행위를 아니 먹는 것 자체를 거부하게 된 것이죠. 그 어떤 부드러운 음식도 그녀의 상처를 달랠 수는 없습니다. 301호의 송희는 새로 이사온 옆집의 윤희에게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대접합니다. 그러나 윤희는 그 음식을 매일 쓰레기통에 버려 버립니다. 송희는 자신의 친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남편에게 받았던 상처가 다시 한번 덧나게 되고 윤희에게 폭력적으로 달려들게 됩니다.

윤희는 이런 송희에게 자신의 대인 기피증과 거식증이 생기게 된 의붓아버지로부터의 성폭행 경험을 눈물로 털어놓게 되는 것이죠. 서로의 과거를 알게 된 이들은 결국 서로에 대한 진한 연민을 느끼고 급속도로  친해지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송희의 취미가 취미다 보니 온갖 종류의 요리 등이 등장합니다. 특히 송희가 살고 있는 원룸의 실내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각양각색의 조리 도구가 걸려 있고 가지각색의 음식 재료들로 널부러져있죠. 밤낮으로 음식을 만들어 남에게 먹임으로써 삶의 만족감을 느끼는 송희가 음식만 먹으면 토해대는 윤희를 위해 만들어주는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대구 스테이크. 부드럽기 그지없는 대구살을 버터 두른 팬에 살짝 구워 소스를 찍어 먹는 이 요리는 송희의 윤희에 대한 연민과 우정, 애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바로 그런 요리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은 결국 윤희의 병을 고치기 위해 윤희가 송희의 요리 재료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좀 으스스하죠. 정상적이지 못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결국 이렇게 부메랑이 돼서 성인이 된 후에도 괴롭히나 봅니다.

글 이명애 기자/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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