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엄마로 산다는 것

최근 주위에 머리를 싸매고 누운 엄마들이 꽤 많다. 물론 지난 4월 초부터 각 대학들로부터 날아온 합격 통지서를 받지 못한 1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다.

올해는 특히 경쟁률이 심했다는 보도가 아니더라도 높은 GPA와 SAT를 받고도 예년 같으면 거뜬하게 붙었을 학교들로부터 내 딸, 아들이 합격 통지서를 받지 못해 한숨만 내쉬는 이들이 많다.

이런 주위의 학부모들을 보다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 올 가을 학기면 하이스쿨에 진학하는 딸 아이도 이제 몇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 둘만 모이면 ‘어느 학원의 어떤 선생님이 잘 가르친다’ ‘대학 지원서에 특기란에 적으려면 몇 가지 특별 활동은 해야 한다’라거나 ‘누구네 집 딸 아이는 어디 어디 대학에서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더라’며 아이의 얼굴을 한번 살펴보는 것도 엄마들이라면 늘 일어나는 생활의 한 단면이다.

누구보다 남과 비교하는 것이 습관화된 한국인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바로 ‘엄친딸’이다. ‘엄마 친구 딸’의 줄임말인 ‘엄친딸’은 성적도 우수하고 빼어나 늘 비교 대상이 되는 학생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엄마들의 교육열과 경쟁심리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엄친딸’이라는 신조어는 학교 급훈에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급훈으로 교장 선생님까지 승인했다는 이 학급의 급훈은 ‘엄친딸이 되자’라는 것이었다. 이 학교의 다른 클래스에는 ‘지하철 2호선을 타자’란 급훈도 액자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지하철 2호선 반경에는 사립대학들이 모여 있으므로 결국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입학하자는 목표가 이런 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여자로 사는 것’ 보다 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그건 아마 ‘엄마로 사는 것’아닐까?  과연 ‘엄마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그럴듯한 직업을 갖는 것보다 딸 아이가 행복해하고 진정으로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여유롭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늘상 내게 최면을 걸어본다. 하지만 눈을 뜨고 세상을 둘러보면 조바심이 나서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녀의 대학 입학에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아니 어느 것도 학부모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대학에 입학하고 싶은 학생이 열정을 갖고 준비하거나 아니면 아예 어렸을 때부터 ‘헬리콥터 부모’가 정해준 스케줄 대로 움직이며 부모가 디자인해준 삶을 위해 준비하는 자녀만이 대학교가 원하는 어플리케이션을 작성할 수 있을 뿐이다. 헬리콥터 부모가 될 마음도 될 형편도 되지 못하는 나 같은 부모가 선택해야 할 길은 그렇다면 단 하나 뿐이다. 자녀 스스로 자신의 삶에 꿈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이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여기에 부모에게 또 하나 필요한 인문학적인 단어가 있다. 바로 ‘소통과 느림’이다. 경쟁 사회의 논리를 벗고 나만의 철학을 가꾸는 것은 ‘느림’이다. 그리고 나만의 철학을 이뤄내기 위해 세상 모든 것들과 교류하는 것은 ‘소통’이다. 빠른 속도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쟁사회 논리에서 부모 스스로 벗어나 부드럽고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인생의 소중함을 생활 속에서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 나 또한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이명애/미주 헤럴드경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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