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이 폭등하고 있다. 쌀값만이 아니다.세계 곡물가격도 급등하고 있다.대체에너지 바람에 바이오디젤과 에탄올 연료가 되는 옥수수 가격이 엄청나게 뛰었다. 밀과 콩을 재배하던 농장들이 돈을 벌기위해 옥수수로 재배 곡물을 바꾸어 상대적으로 수확이 줄어든 밀과 콩의 가격도 폭등했다. 전세계적으로 식량파동이 확산되고 있는 조짐들이 보이자 일부 국가에선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사태도 초래될수 있다며 국가 차원의 대책들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세계 2위의 쌀 수출국인 베트남 정부가 쌀 사재기 금지령을 발표했고 말레이시아 정부는 저소득층이 쌀을 살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필리핀에서는 쌀을 사재기하다 적발될 경우 종신형에 처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사정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쌀을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는 쌀카드를 배포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초만 해도 톤당 300달러 수준에서 거래되던 쌀값이 불과 1년 3개월여만에 무려 3배 가까이 치솟아 현재 국제 쌀 가격은 톤당 1,000달러를 돌파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한 국제 식량위기가 초래된 적이 있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한국엔 비상사태를 대비한 사재기 열풍이 불어닥쳤다. 쌀을 비롯 라면,연탄, 심지어 화장지까지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사재기 풍토가 국가적으로 만연했다.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식량위기의 심각성보다 5개 포장의 덕용 삼양라면을 양은냄비에 넣고 연탄불에 끓여먹던 추억이 먼저 떠오른다. 나중에 알았지만 국가적인 이슈로 해외뉴스 톱을 장식했다고 하니 사재기는 후진국의 전형적인 악습이다.
지난 2∼3개월동안 한인타운의 쌀값도 2주간격으로 오르고 있다. 세계적으로 쌀값이 폭등하고 있으니 이곳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도 예외 일수는 없겠다. 5.99달러이던 20파운드 쌀 한포대가 9.99달러부터 12.99달러에 팔리고 있으며 홀세일러들은 한인타운 대형마켓에 5월분 쌀 공급가격마저 인상한다고 통보해 놓은 상태다.
미 주류 대형 할인판매점인 코스트코도 일부 매장을 중심으로 고객 1명에게 대량으로 쌀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정도니 그야말로 ‘금싸라기 쌀’이 돼버렸다. 한인타운 대형마켓의 주차장에선 한인쇼핑객들이 너나할 것없이 쇼핑카트에 담아온 쌀 포대를 자동차에 싣느라 바쁘다. 한국 고유의 명절 설날은 이미 지났고 추석은 아직 멀었는데 모두들 가정에서 명절잔치라도 하듯 쌀을 구입해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인타운 대형마켓들도 미국 주류 마켓들처럼 쌀 구입량을 통제하기 시작, 판매를 1인당 1포로 제한해버렸다. 미국 쌀 값 가격 폭등의 원인은 쌀 공급 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쌀을 재배하는 농장, 도정회사, 홀세일러 그리고 마켓순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에 의해 쌀은 가정의 식탁에 올려지고 있다. 전세계적인 가뭄과 쌀 재배 농가의 부족으로 쌀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고 도정회사의 기업적 매점매석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소비자들의 사재기 열풍 또한 쌀값 가격 인상에 조연을 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해 흘러나오는 식량파동 소식에 1970년대의 한국상황이 재현될까 한인들은 쌀을 무조건 쇼핑카트에 담고 있다. 마켓 관계자는 쌀의 재고분을 조절하며 소비자들이 대량으로 구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말하지만 가격이 오를 수록 쌀 소비는 늘어간다며 한국인의 사재기 풍습을 지적했다.
이민 100년사에 빛나는 한인커뮤니티의 외형적 성장은 선진국에 버금간다.그러나 후진국에서 볼 수 있는 사재기 풍습은 아직도 여전하다. 남들이 사니까 나도 살 수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곳간도 없는 집안에 쌀을 쌓아두고 있다. 1970년대로 돌아간 듯한 한인들의 소비의식 수준을 지켜보노라면 그 옛날 향수를 되살려주는 아련함과 동시에 씁쓰레한 기분도 함께 찾아든다.
미주본사 취재팀 부장 김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