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법 발효후 자금시장 더 악화

미국이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 해소를 위해 7천억달러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구제금융법을 발효시켰으나 시장은 오히려 더 악화일로로 치닫는 양상이다.

만병통치약과 같은 구제금융법만 통과되면 시장심리가 급속히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를 무색하게 하면서 6일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4년만에 처음으로 10,000선이 붕괴됐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을 비롯해 미국 금융당국의 수뇌부들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 이외에 달리 해법이 없다면서 의회에 구제금융법의 신속한 통과를 호소했지만 정작 이 법이 발효된 후 시장이 안정되기는커녕 자금시장의 경색은 더욱 심해지고 글로벌 증시는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양상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구제금융법을 제안했던 미 행정부와 이를 지지한 의회 의원들의 판단이 틀린 것인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6일 텍사스주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행사에 참석한 후 구제금융 계획의 효과가 발휘될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고 “금융시스템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법이 문제를 해결하는 큰 조치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말 처럼 지금은 시장이 요동치지만 시간이 흐르면 문제가 순조롭게 풀려나간다면 그렇게 큰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시장의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타이밍을 놓친 시그널, 오히려 시장심리 악화 초래
유럽증시의 폭락에 이어 이날 다우지수가 장중 한때 800포인트나 급락하면서 ‘검은 월요일’이 거의 매주 되풀이되는 양상을 보였다. 지난 월요일인 9월29일은 미 하원의 구제금융법안을 부결시키면서 뉴욕증시가 기록적인 폭락장세를 보였다.

하원의원들이 각자 판단해 법안을 부결처리한 것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참혹했다. 이후 상원이 수정안을 가결하고 하원도 이달 3일 마침내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사후약방문처럼 시장의 심리는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였다.

◇초단위로 감염되는 글로벌 금융시장
아시아와 유럽, 미국의 증시가 시차를 두고 개장과 폐장을 반복하면서 동조화 현상을 보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베어스턴스, 리먼브러더스 등의 붕괴 이후 유동성 경색 현상은 유럽까지 강타, 독일과 벨기에의 대형 은행들이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파산을 면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위기가 애초 미국 특유의 현상으로 여겨졌지만 알고 보니 유럽의 금융회사들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에 잘못 투자했다고 천문학적인 손실을 봤다. 그 후유증이 유럽의 금융위기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차원에서 7천억달러의 공적자금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이미 글로벌 차원으로 확산된 금융위기를 쉽게 진정시킬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도 시장을 자꾸 꼬여 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미 시작된 경기침체..장기화 우려
프랑스의 경우 올해 2.4분기에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 이어 3,4분기도 마이너스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경기침체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영국도 내년 초에는 경기침체 상황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미국은 3분기와 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졌는지는 전미실물경제협회(NABE)의 판단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흔히 2분기 연속 GDP 성장률이 감소하면 경기침체라고 하지만, NABE는 고용, 소득, 산업생산, 도소매거래 등 4개 변수를 감안해 훨씬 정교한 조사기법을 통해 경기침체 여부를 판단한다.

이런 경기침체가 과거에 비해 훨씬 장기화할 전망이다. 일본이 거품붕괴 후 10년 장기불황을 겪었던 것 처럼 미국도 부동산 거품 붕괴로 초래된 조정국면이 상당기간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이 만만찮다.

이 때문에 미국의 구제금융법이 금융위기를 타개하는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낙관론이며, 그동안의 자산가치의 거품과 과잉투자, 과잉소비가 정리될 때까지는 상당한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분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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