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시청률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 조건은 당연히 드라마의 품질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편성이다. 어떤 드라마와 맞붙는지 적절한 타이밍을 노리는 것은 방송사가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인기 대작 드라마라는 강적 대신 만만한 상대를 만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소망. 불황 속에 방송사 간 눈치편성은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경쟁작을 피하라=SBS ‘자명고’(왼쪽사진)는 지난 10일 첫방송을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자명고’는 지난달 23일 시작했어야 한다. 그러나 MBC ‘에덴의 동쪽’이 4회 연장을 하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방송을 늦췄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부랴부랴 ‘김수현 작가 스페셜’을 준비한 SBS는 ‘홍소장의 가을’ ‘은사시나무’로 시간을 끌었다.
그런데 ‘에덴의 동쪽’이 또 2회 연장에 들어가자 ‘자명고’로서는 입장이 곤란해져다. 이에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월요일인 지난 9일에는 스페셜 방송을 내보내고, 10일에 2회 연속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로 결정했다. 50부작 사극 ‘자명고’는 SBS의 야심찬 기획이다. 타 방송사의 인기 드라마에 묻혀 100억원이 넘는 대작이 주목받지 못한다면 이것만큼 속쓰린 일도 없을 것이다.
편성에 따른 대진운은 영화나 드라마나 무척 중요하다. 실제 콘텐츠와 입소문이 중요하지만 대진운은 초반 흥행을 크게 좌우한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계속 시청하게 되는 드라마의 특성상 이는 더욱 그렇다. 치열한 눈치작전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편성이 시청자로서는 달갑지 않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하는 방송사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연장의 법칙=인기 드라마의 연장은 과도한 눈치편성을 부추기는 주범이다. 연장방송은 이제 선택옵션이 아닌 필수사양이다. 인기 드라마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여기저기서 연장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SBS ‘아내의 유혹’, KBS2 ‘꽃보다 남자’ 등 연장은 수순이다. 높은 시청률에 짭짤한 광고수익을 제공하는 드라마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방송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또 후속 드라마 상황에 따라 연장이 결정되기도 한다. MBC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제작이 무산되면서 ‘내조의 여왕’을 긴급편성했다. 이에 따라 시간을 벌기 위해 ‘에덴의 동쪽’은 1회 추가, 스페셜 방송까지 준비했다. 그러나 제작비는 물론 배우의 스케줄 등까지 모두 조정해야 하는 연장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청률이 안 나오는 드라마의 조기 종영은 쉽지만, 연장은 여러가지 문제가 걸려 있다. PPL 등을 통해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감당하는 외주제작사로서는 곤란한 면이 많다. 한 방송관계자는 “제작사는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를 보는데 연장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방송사의 요구에 원활하게 합의를 해 연장하는 쪽으로 대개 가닥을 잡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연장이 힘들 경우에는 어느새 드라마의 새 관행으로 자리잡은 ‘스페셜’이라는 손쉬운 방법도 있다. 편성전략에 따라 첫 방송 전, 혹은 마지막 방송 뒤에 편한대로 붙이는 스페셜은 어느덧 스페셜의 원래 뜻과는 달리 ‘땜빵’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오연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