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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버지가 뺑소니 교통사고로 어린 자식을 잃었다. 또 다른 소년의 아버지가 가해자다. 한 아버지는 부성애에 오열하고 한 아버지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영화 ‘레저베이션 로드’는 피해자와 가해자로 운명이 엇갈린 두 젊은 아버지를 통해 부성애와 죄의식을 그린 심리드라마다.
죽음으로 가족과 결별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라면 죄의식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감정 중 하나다. 한 순간의 사고가 바꾸어버린 두 남자, 두 아버지의 운명. 영화는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통해 관객들을 두 인물의 격정 속으로 발을 들여 놓도록 한다.
비극 속에서 자신의 내부에 도사린 어둠, 불의에 맞선 두 남자의 도덕적 투쟁과 행복을 찾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이 영화의 줄기다.
사랑스러운 아내, 어린 자식들과 함께 부족할 것없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던 교수 에단(호아킨 피닉스)과 이혼했지만 아들에게만큼은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변호사 드와이트(마크 러팔로). 평범한 두 중년 남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곳이 바로 레저베이션 로드라고 불리는 교외의 도로다. 가족과 함께 소풍을 갔다 돌아오던 에단이 한밤중 귀가길에 잠시 주유소에서 차를 멈춘 사이, 어린 아들 조쉬가 도로변에 잠시 내려서 있다가 지나가던 차에 치이는 끔찍한 사고가 잃어난다. 가해자 차량은 잠시 주춤했다 뺑소니친다. 이 차에는 메이저 리그 월드시리즈를 구경갔다가 돌아오던 드와이트와 그의 아들이 타고 있었다. 드와이트는 조수석에 탔던 아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사고현장에서 도망쳤지만 끊임없는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한다. 그는 신분을 숨긴 채 피해자 가족의 주변을 몰래 맴돈다. 한편 에단은 평상심을 애써 지키며 슬픔에 빠진 아내(제니퍼 코넬리)와 딸(엘 패닝)을 위로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아들을 잃은 상실감과 그리움이 가해자에 대한 격렬한 증오와 분노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간다. 진척없는 경찰 수사에 실망한 그는 마침내 범인을 직접 잡겠다고 나서고 드와이트는 자수와 은폐 사이에서 심각한 심적 방황을 겪는다. 이 영화의 미덕은 두 남자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관객들을 도덕적 갈등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에단은 죽은 아들을 향한 애끓는 부성애와 얼굴 모르는 범인에 대한 불같은 살의 사이에서 어느덧 황폐화되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복수에 대한 집착이 살아남은 아내, 딸마저 불행으로 내몰고 있는 것. 드와이트는 자수해서 죄값을 치르고 아들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자는 양심과, 어렵게 되찾은 아들과의 행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유혹 사이에서 주저한다. 두 남자가 피해자와 가해자로 맞딱드리게 되는 후반부 장면에서 누군가에게 향한 총구는 두 인물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호아킨 피닉스, 마크 러팔로는 물론이고 제니퍼 코넬리나 엘 패닝 등 주,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가 가진 힘이다. 하지만 두 인물을 근거리에서 보여주고 드와이트의 죄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영화는 지나치게 잦은 우연에 의존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로서가 아니라 에단과 드와이트는 주변인물들과 업무를 매개로 끊임없이 마주치게 된다. 실제 현실은 종종 이처럼 운명의 장난같은 기막힌 우연을 보여주곤 하지만 영화에서 ‘영화같은 우연’은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 뿐만 아니라 사건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 인물 묘사와 대사가 ‘전형성’을 보여주는 점도 아쉽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호텔 르완다’ 등으로 호평을 받은 테리 조지 감독의 작품이다.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