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는 혁신을 우연은 기적을 낳았다

커넥션 / 제임스 버크 지음/살림

현대문명을 대표하는 컴퓨터와 기계자동화, 통신, 비행기, 원자탄 등 결정적인 산물들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천재의 발명으로 여기지만 그 이면은 보다 복잡하다. 당시 지리적 조건, 기후변화, 전쟁, 종교적 신념, 공동체의 요구 뿐만아니라 개인의 주의깊은 관찰과 손재주, 야심, 속임수 등 숱한 요인들이 뒤섞여 있다. 이들이 선후 관계를 이루거나 횡적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보다 필요한 쪽으로 기대가 이뤄져 혁신에 혁신을 거듭한 산물이라는게 과학사가 제임스 버크의 주장이다.

1978년 초판돼 개정판을 거쳐 30년간 흔들림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버크의 걸작 ‘커넥션’(살림)은 지금의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과거로부터의 연속선상에서 놓여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문명의 산물들, 문화적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 탐험가처럼 연원을 찾아낸다.
 
그가 애써 혁신의 발자취를 찾아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읽으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혁신의 속도가 가속화하고 혼란스러운 현재의 상황을 바로 보고 방향을 찾는데 나침반 역할을 해줄 수도 있다.
 
이 책의 새로움은 무엇보다 일련의 사건과 발견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는 종래 교과서가 보여주는 역사의 진행방향과는 다르다. 또 역사를 설명하는 몇몇 범주에 깔끔하게분류되지도 않는다. 우연성이 강조되고 영역을 넘나든다.가령 운송의 역사적 발전에 기여한 대부분의 요소는 탈 것과 전혀 관계가 없다.
 
저자에 따르면 컴퓨터의 발명은 16세기 유럽군주들이 열광한 자동인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행하다시피한  남자와 여자, 동물 인형으로 가득찬 정원은 수력에 의해 작동되는 놀라운 꼭두각시 인형극장이었다.
 
자동음악이 나오는 물오르간은 17세기 대유행한 자동오르간을 만들어낸다. 자동오르간을 위한 제어 메커니즘으로서 걸못을 박은 원통의 존재는 1725년 부숑이 리용의 실크 직기를 자동화하기 위해 구멍뚫린 종이를 사용할 생각을 갖게 만들어준다. 이는 다시 인구조사를 위한 통계자료 모음을 위한 계산기로, 데이터 전송의 발전으로 이어져 컴퓨터발전의 핵심부분이 된다.
 
인쇄술은 어떤가. 15세기 흑사병이 사라진 후 흥청망청해진 유럽의 직물산업과 연관이 있다.

인구가 줄어든 대신 개인소득이 증가하면서 유럽은 살 만해진다. 상류층은 사치스런 옷에 지출이 심해져 실크 소비가 급증했다. 흑사병 전, 수평직기와 물레의 도입으로 모직과 린넨의 공급이 충분해지면서 이제 서민들도 린넨을 입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입다가 낡아진 린넨은 쌓여가고 이를 수거하는 넝마수거인이 등장한다. 린넨 넝마는 고급 종이 제조를 위한 탁월한 원료로 쓰이고 벽을 도배할 정도로 종이값이 싸지면서 새로운 기술개발의 요구가 생긴다. 여기서 자동화된 글쓰기의 어떤 형태가 생겨나게 되고인쇄술의 발견을 낳는다.  또 제트기관이나 카뷰레터의 구조와 작동에 기초가 된 벤투리 원리는 원래 펌프를 통과하는 물의 흐름을 재려는 시도에서 나왔다.
 
전쟁에서 음식의 공급, 맥주를 차게 만들기 위한 거듭된 시도들의 결과 등장한 진공플라스크, 수소의 액화와 발사체로의 진화과정도 흥미롭다.
 
저자는 각 사건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시간적, 지리적으로 매듭들을 찾아내 이어준다.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현대적인 발명품의 등장까지 이어지는 사건의 연속을 따라가는 것은 여간한 재미가 아니다. 저자는 이들을 통해 혁신은 그것을 개발하려는 충만한 기대와 연결돼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
 
종래 뛰어난 발명가 개인에 초점을 맞춰온 발명사에서 벗어나 작은 사건들의 연속성, 평범한 개인들도 미미하게나마 역사의 변화를 추동한다는 저자의 전개방식은 새롭다.
 
과거혁신의 사례들이 단순히 선형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전혀 엉뚱한 요소가 들어오고 우연성이 개입하면서 다양한 요소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는 데도 하나의 시각을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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