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림자살인’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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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잘해야 된다, 잘해야 된다고 스스로를 못살게 굴면서 작품을 했죠. 이번 작품은 ‘너는 잘하니까 즐겨봐’라고 되뇌면서 촬영했어요. 그러니까 좋던데요.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이 되니까 알았어요.”
 
“즐기면서 하니까 좋다”며 황정민(39)은 “그걸 깨닫기까지가 10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그림자살인’은 사실상 데뷔작인 ‘쉬리’ 이후 17번째 장편영화 출연작이다.
 
이 영화에서 황정민은 일제 침략기인 구한말의 경찰 출신 탐정 ‘홍진호’를 연기한다. 바람난 유부녀를 뒤쫓는 것으로 돈푼이나 손에 쥐는 인물이었지만 공교롭게 연쇄살인 수사에 나서게 되는 인물. 시나리오상에서는 훨씬 무겁고 어두운 캐릭터였지만 영화는 훨씬 더 가볍고 경쾌하며 유머러스한 색깔로 나왔다.  ‘땅이 넓으니 바람난 여편네가 더 많을 것이 분명한’ 미국행을 꿈꾸는, 일견 ‘무개념’형인 홍진호는 황정민이 어깨에 힘을 빼고 만든 인물이다. 당시 의학도(류덕환 분)를 조력자로 두고 마치 셜록 홈스-왓슨 박사 같은 짝패의 탐정추리영화를 내놨다.
 
황정민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패밀리가 떴다’ ‘김정은의 초콜릿’ 같은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했고 차기작은 데뷔 후 처음인 TV 드라마 ‘식스먼스’다. 연극무대와 단역, 조연, 비주류 영화를 거쳐 30대 중반에서야 톱배우 반열에 든 황정민이 이제는 한국 연예 스타시스템의 한가운데로 들어선 느낌이다.
 
“시스템요?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어요. 다만 저에게 중요한 것은 관객이에요. 제가 누굴 위해 연기하는데요? 관객이 없으면 배우도 없죠. 배우의 마지막 책임이 홍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할 거라면 제대로 해야 되고요. 제작 환경을 탓하며 드라마를 꺼렸던 예전의 생각도 바보 같지 않았나 해요. 스스로에게 쳐놓은 경계나 벽이었죠. 기타노 다케시는 대단한 영화를 만드는 거장이지만 TV에서 정말 바보 같고 허접해 보이는 코미디도 하죠. 한때는 그걸 일주일에 8개 프로그램이나 했다고 해요. 대단하죠.”
 
황정민은 “관객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뼈아플 정도로 잘 안다”고 했다. 90년대 중반 ‘지하철 1호선’을 공연할 무렵 관객이 2명뿐이었던 적도 있고, 객석은 미어터졌는데 정전이 돼 다 돌려보내면서 운 적도 있다.
 
드라마 출연은 부모님이 더 좋아하신다. 상 탈 때마다 어린아이같이 좋아하셨던 부모님이다. 지금은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소일하시지만 아들을 자랑스레 생각하실 당신들을 생각하니 뿌듯하다. 세 살배기 아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다 줬다 찾아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시키지도 않은 흉내까지 내면서 입이 귀에 걸린다.
 
“배우는 경주마”라고 말하면서 뒤도 옆도 안 보고 달려왔던 황정민이 이제는 또 다른 기쁨과 행복을 발견해가고 있다.
 
황정민은 ‘그림자살인’은 평이나 흥행이 어떻든 자신에겐 하나의 구두점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메릴 스트립같이 “잘 늙고 싶다”고 했다. 마흔 이후 황정민이 보여줄 또 다른 연기를 기다려볼 만한 이유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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