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어온 미국인들은 소비를 줄이는 내핍생활을 하면서 저축을 늘려왔다. 실제로 미국의 지난해 세후 수입에 기반한 저축률은 4% 이상으로 늘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1930년대 대공황이나, 이후 여러 차례의 경기침체기에도 소비가 줄고 저축이 느는 일시적 현상이 나타났지만 침체가 끝나면 다시 소비가 활성화 돼 왔다면서 이번의 경우도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소비가 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10일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절약이 미덕’이라는 사고가 미국인들을 영구적으로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조다. 노스웨스턴대의 조너선 파커 경영학과 교수는 “올해 말의 저축률이 경기 침체가 시작됐던 당시 보다 더 올라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의 절약 풍조는 과거 ‘한 푼 생기면 두 푼 쓴다’는 소비지향적 사고 방식이 갑자기 바뀌었다거나, 절약을 생활화 하는 고상한 금융관을 갖게 됐기 때문이 아니라 절약해서 저축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은 절박한 현실 때문이라고 신문은 분석했다.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증시가 폭락하면서 엄청난 자산 손실을 보게된 소비자들은 노후 자금과 아이들의 대학 학자금을 마련해야할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만일 증시나 부동산 가격이 과거와 같이 급등하지 않는다면 저축을 늘리는 것 밖에는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때 만연했던 쉬운 ‘신용(credit)쌓기’도 이제는 어려워 졌고, 신청만 하면 지급됐던 모기지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은행들은 조금이라도 위험부담이 있는 대출은 꺼리고 있다. 이는 미국인들이 집을 사려면 더 많은 저금을 해야 하고, 과거보다 대출 액수는 줄어들 것임을 의미한다. 최근 퓨 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많은 미국인들이 전기오븐 같은 물건을 필수품이 아닌 사치품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의 근검절약은 미국은 물론, 전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지적했다. 특히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소비의 비중이 70%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저축률 증가는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 가정의 긴축은 “수요의 원천을 이제 어디로 바꿔야 하느냐”는 근본적 문제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미국 가정의 긴축정책과 저축률 증가는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저축 증가는 투자 증가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면서 국민들의 삶을 전반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