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고무줄’편성 여전…시청자는 없다

‘프로그램 시간은 시청률에 좌지우지된다?’ 시청률 전쟁이 과열되면서 TV 프로그램 시간이 조금씩 앞당겨지거나 종전보다 늘어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고무줄 시간이다. 예전에는 정시에 시작했던 프로그램이 타 방송사의 경쟁 프로그램보다 앞서 방송하기 위해 조금씩 앞으로 당겨지는 경쟁을 하더니 3사 모두 40분을 앞당기는 사례까지 일어났다. 60분을 기준으로 방송하던 예능 프로그램은 80분으로 늘어났고, 드라마는 이제 거의 70분이 정석이다. 편성을 통해 방송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 시청률을 올려보려는 꼼수인 셈이다. 하지만 오히려 제작비만 올라가고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시청자와 제작진 모두 불만이 높다.

제작진도 “고비용에 방송質 하락” 우려

▶앞으로 또는 뒤로, 뒤죽박죽 방송시간=현재 일요일 저녁에 방송되는 공중파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 시간은 보통 오후 5시20분에 시작해 7시50분쯤 끝난다. 토요일 저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두 프로그램으로 나뉜 방송 시간은 각각 오후 5시15분~6시25분, 6시30분~7시50분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저녁 6시 정시에 시작했던 프로그램들이다. 시청률 경쟁 때문에 무려 40분가량 앞당겨진 것이다. 드라마의 경우 이 같은 늘리기 방송 때문에 총 분량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1시간가량이던 미니시리즈와 주말 드라마는 현재 회당 70~75분 방송되고 있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MBC의 ‘내조의 여왕’은 밤 10시부터 11시12분까지 72분 방영한다. KBS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은 7시55분에 시작해 9시5분까지, SBS의 ‘찬란한 유산’ 또한 밤 10시5분부터 11시15분까지 70분 방송을 한다.
 
지난해 80분까지 갔던 드라마 시간 전쟁은 방송 3사가 합의를 통해 그나마 72분으로 일단락됐다. 종전에 비해 20% 가까이 방영시간이 늘어난 셈이다. 24회 분량이라면 5회분이 더 늘어난 것과 마찬가지다.
 
방송 시작 시간과 총 방영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난 데는 말할 것도 없이 ‘시청률 경쟁’이 가장 큰 원인이다. 비슷한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는 타 방송보다 일찍 시작해 채널을 고정시키는 게 유리하다. 그러다 보니 10분씩 앞당기게 됐고 결국 예전보다 40분이나 앞서게 된 것이다.
 
시작 시간을 움직이기 힘든 드라마는 경쟁사 드라마가 끝난 뒤 10분을 더 방송해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을 유도한다. 이는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져 방송사 수입과 직결되는 광고에도 긍정적 영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 PD는 “시청률 경쟁 때문에 프로그램 시작 시간을 앞당기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정작 시작 시간을 잘 몰라 앞 30분가량은 버리는 셈 치고 있다”며 “편성 때마다 10분을 더 앞당기자는 말이 나와 곤란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제작비는 ↑, 프로그램 질은 ↓=문제는 시청자들도 모르는 방송 시작시간과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분량으로 인해 제작비 낭비와 프로그램 질적 저하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오후 5시반은 시청자들이 저녁 시간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시청률이 나오기까지 30분 이상이 소요된다. 실제로 현재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1위를 달리고 있는 SBS의 ‘패밀리가 떴다’의 시청률을 살펴보면 지난 17일 방송분의 시청률은 23.9%(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였으나, 오후 5시20분에는 9.7%로 시작해 6시5분이 지나서야 20%대를 넘어서며 안정적인 시청률을 보였다.
 
‘패밀리가 떴다’는 시청률이 높기 때문에 광고 판매에 대한 걱정이 덜한 편이지만, 같은 시간에 방송되는 타 프로그램은 광고 판매는 쉽지 않은데 제작비는 오히려 더 들어 ‘울며 겨자 먹기’로 방송시간을 앞당기고 있다고 제작진들은 입을 모은다.
 
드라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중 드라마의 경우 매주 2회 70분의 방송 분량을 만들어내기 위해 제작비는 더욱 늘어나지만, ‘쪽대본ㆍ드라마의 생방송화’ 등의 오명(汚名)을 만들며 제작시간에 쫓겨 경쟁력 있는 드라마를 만들기 힘든 구조가 됐다.
 
김영덕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원은 “우리나라 드라마는 회당 70분이라는 시간적 압박에 시달려 다양한 스토리의 부재로 인해 웰메이드 드라마가 나오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일본의 방식처럼 주 1회 편성이나 방송시간 축소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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